조선태조어진
작가 미상
- 제작 시기
- 1872년(고종9)
- 분류
- 회화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한 나라의 시조로서 국초부터 여러 곳에 특별하게 보관되어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이 초상화는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용상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 오래된 화법임을 알려준다. 의자에 새겨진 화려한 용무늬는 공민왕상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왕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선관은 골진 부분에 색을 발하게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영법을 사용하여 얼굴을 표현하였다. 고종 9년(1872)에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인데, 전체적으로 원본에 충실하게 그려 초상화 중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소화해 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예요. 나라의 시조인 만큼 국초부터 전국 여러 곳에 총 스물여섯 점이나 모셔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전주 경기전에 있는 이 한 점만이 남아 있어요.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태조가 용상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전신상으로, 초상화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롭다는 정면상을 훌륭히 소화해 냈어요. 각진 곤룡포 윤곽선과 의자의 화려한 용무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왕의 초상화에서 이어져 온 특징이에요.
1872년 고종 9년, 낡은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라 해요.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아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아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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