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 필 산수화조도첩
- 제작 시기
- 1642년(인조 20) 추정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이징 필 산수화조도첩’은 조선 중기 소경산수(小景山水)와 화조영모(花鳥翎毛)로 명성이 높았던 허주(虛舟) 이징(李澄, 1581~?)의 그림 18점과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 1595~1645) 등 당시 유명 문인들의 제시 37점을 수록한 시서화(詩書畵) 합벽첩(合壁帖)이다. 이들이 그림에 대해 쓴 제발문(題跋文)을 통해 이징의 62세 무렵인 1642년(인조 20년)경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이징이 조선 최고의 화가로 인조의 총애를 받아 화원(畵員)들을 지도하기 위해 도화서(圖畫署) 교수(敎授)로 임용된 시기로서, 그의 예술적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이다. 이 서화첩은 이징이 화조․영모 분야를 비롯해 산수에 있어서도 17세기 회화를 선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작으로서 의의가 있다. 기년작(紀年作)이 많지 않은 조선 중기 산수화조화 중 드물게 작가와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작품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서화 합벽첩으로 한국회화사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다.
이 화첩은 조선 중기에 산수와 화조 그림으로 이름 높던 화가 이징의 그림 18점에, 이식·이명한 같은 당대 유명 문인들이 붙인 시 37점이 함께 어우러진 시서화 합벽첩이에요. 그림과 시와 글씨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지요.
문인들이 남긴 글에서 이 화첩이 이징의 나이 예순둘 무렵인 1642년경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어요. 이때는 이징이 인조의 총애를 받아 도화서 교수로 임용되어, 그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습니다.
화조와 영모는 물론 산수에서도 17세기 회화를 이끌었던 이징의 역량을 두루 보여 주는 기준작이에요. 작가와 제작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조선 중기 작품 자체가 드문 데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서화 합벽첩이라 우리 회화사 연구에서 그 가치가 높습니다.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인조의 총애를 받은 화가
〈산수화조도첩〉은 조선 중기에 작은 풍경과 꽃·새 그림으로 명성이 높았던 허주 이징의 그림 열여덟 점과, 이식·이명한 같은 당대 이름난 문인들의 제시 서른일곱 점을 함께 엮은 시서화 합벽첩이에요. 그림에 붙은 글들로 보아, 이징이 예순둘이던 1642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과 시가 마주한 합벽첩
이 무렵은 이징이 조선 최고의 화가로 인조의 총애를 받아, 화원들을 지도하는 도화서 교수로 임용된 시기였어요. 그의 예술적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입니다. 한 면에는 이징의 그림이, 다른 면에는 문인들의 시가 마주 놓여,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진 한 권의 예술로 완성되었어요.
17세기를 이끈 솜씨
이 화첩은 이징이 꽃과 새, 산수에서 17세기 회화를 앞서 이끈 역량을 잘 보여 주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작이 됩니다. 만든 때를 알 수 있는 작품이 드문 조선 중기 산수화조화 가운데, 작가와 제작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귀해요.
관람 포인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서화 합벽첩으로 한국 회화사 연구에서 가치가 높은 작품이에요. 그림과 시가 한 장씩 번갈아 펼쳐지는 형식 속에서, 17세기 문인 문화의 우아한 만남을 느껴 보세요.

조선이 사랑한 한 여인의 자태, 옷고름 매만지는 손끝까지.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