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필 서원아집도 병풍
- 제작 시기
- 1778년(조선 정조 2)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김홍도 필 서원아집도 병풍은 1778년(조선 정조 2) 김홍도가 그린 작품으로 북송(北宋) 영종(英宗, 재위 1063∼1067)의 부마 왕선(王詵)이 수도 개봉(開封)에 있던 자신의 집 서원(西園)에서 1087년경에 소식(蘇軾)과 이공린(李公麟), 미불(米芾) 등의 여러 문인들과 함께 다양한 문예활동을 즐겼던 ‘서원아집(西園雅集)’을 주제로 한 것이다. 17세기 이래 조선에 유입된 명대 구영(仇英)의 작품에서 도상을 차용하였지만, 배경의 버드나무를 비롯한 암벽, 소나무 등을 과감한 필치로 그려내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길상적 의미를 지닌 사슴과 학을 그려 넣어 조선의 서원아집도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총 6폭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귀거래도를 그리는 이공린, 시문을 창작하는 소식, 담론하는 원통대사 등의 등장인물을 3폭에서 6폭에 배치하고 있다. 또한 5폭에서 6폭 상단에 14행으로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제발이 적혀 있는데, 이에 따르면 1778년 9월에 이 작품이 완성되고 3개월 후 1778년 12월 강세황이 김홍도를 ‘신필(神筆)’이라고 칭송하며 그 이유를 밝힌 내용이 적혀 있어 김홍도의 예술 세계를 파악하는 귀중한 문헌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홍도 필 서원아집도 병풍은 조선 후기에 성행한 아회(雅會)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화원 화가를 대표했던 김홍도의 34세 화풍을 살필 수 있는 기년작이라는 점에서 회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이후 유행한 서원아집도 병풍의 새로운 모델을 제기한 작품으로서도 주목된다. 특히 중국에서 유래한 화풍을 조선화하여 재창조해 발전시킨 조선시대 회화사의 독자성, 창조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작품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다.
이 병풍은 1778년에 김홍도가 그린 작품으로, 중국 북송 때 왕선이 자신의 정원 서원에서 소식·이공린·미불 같은 당대의 문인들과 함께 시와 그림을 즐기던 '서원아집'을 주제로 삼았어요. 옛 문인들의 멋스러운 모임을 그린 셈이지요.
중국 명나라 구영의 작품에서 인물 구성을 빌려 왔지만, 김홍도는 배경의 버드나무와 암벽, 소나무를 과감한 필치로 그려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어요. 게다가 길상의 의미를 지닌 사슴과 학까지 더해, 완전히 새로운 조선의 서원아집도로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5폭에서 6폭 위쪽에는 스승 강세황의 글이 적혀 있는데, 작품이 완성되고 석 달 뒤 강세황이 김홍도를 '신필'이라 칭송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화원 화가를 대표하던 김홍도의 34세 화풍을 또렷이 보여 주는 기년작이자, 중국에서 온 화풍을 조선화하여 재창조한 우리 회화사의 중요한 기준작입니다.
- 옆으로 흐르는 풍경 — 여섯 폭이 이어진 긴 화면을 왼쪽의 모임에서 오른쪽의 누각으로 천천히 훑게 돼요. 두루마리를 펼치듯 시선이 가로로 흘러갑니다.
- 모여 앉은 문인들 — 왼쪽과 가운데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펼치며 둘러앉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어요. 저마다 다른 자세로, 한자리의 우아한 모임을 보여 줍니다.
- 과감한 나무와 바위 — 인물들 사이로 굵은 줄기의 노송과 우뚝한 암벽이 거침없는 붓질로 솟아, 잔잔한 인물 묘사에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요.
- 숨은 사슴과 학 — 화면을 살피면 바위 곁의 사슴과 물가의 학이 보여요. 길상의 짐승들을 슬쩍 끼워 넣어 조선식 모임으로 새로 빚어낸 자취입니다.
- 왼쪽 위의 글 — 맨 왼쪽 위에 빼곡히 적힌 글씨가, 이 모임에 부친 사연을 화면 안에 함께 담아 둡니다.
이 긴 모임 속에서, 당신은 어느 인물의 곁에 가장 머무르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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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문인들의 모임
〈서원아집도 병풍〉은 1778년, 김홍도가 서른넷에 그린 작품이에요. '서원아집'이란 북송의 부마 왕선이 수도 개봉의 자기 집 서원에서 소식, 이공린, 미불 같은 여러 문인들과 시와 그림을 즐긴 모임을 말합니다. 천 년 전 중국 문인들의 우아한 모임이 김홍도의 붓끝에서 되살아났어요.
조선의 서원아집으로
김홍도는 17세기 이래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구영의 작품에서 도상을 빌려 왔지만, 그대로 베끼지 않았어요. 배경의 버드나무와 암벽, 소나무를 과감한 필치로 그려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길상의 의미를 지닌 사슴과 학을 더해 조선의 서원아집도로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모두 여섯 폭에, 귀거래도를 그리는 이공린, 시문을 짓는 소식, 담론하는 원통대사 등을 배치했어요.
스승 강세황의 '신필'
다섯째와 여섯째 폭 위쪽에는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이 쓴 글이 있어요. 1778년 9월에 작품이 완성되고 석 달 뒤, 강세황이 제자 김홍도를 '신필'이라 칭송하며 그 까닭을 적은 내용으로, 김홍도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관람 포인트
중국에서 유래한 화풍을 조선의 것으로 재창조한 이 작품은, 김홍도 서른네 살의 화풍을 보여 주는 기준작이에요. 이후 유행한 서원아집도 병풍의 새로운 본보기가 된, 조선 회화의 독자성과 창조성을 잘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씨름판보다 더 볼만한 건, 빙 둘러앉은 구경꾼들의 표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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