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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필 북원수회도첩

정선

제작 시기
1716년(조선 숙종 42)
문화권
Korean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작품 소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선 필 북원수회도첩’은 1716년(숙종 42) 과거 급제 60년을 맞은 이광적(李光迪, 1628∼1717)이 9월 16일 회방연(回榜宴)을 치른 뒤 10월 22일 장의동 집 북원에서 같은 동네 노인들을 모아 기로회(耆老會)를 연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서화첩이다. 이 행사는 정선의 외삼촌 박견성(朴見聖, 1642∼1728)이 주도하여 열렸다. 이 서화첩은 총 20장 40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앞에는 <북원수회도>가 수록되어 있으며 참석자의 좌목과 시문, 발문이 포함되어 있다. <북원수회도>는 박견성의 아들이자 정선의 외사촌형인 박창언이 쓴 발문에 정선의 그림임이 밝혀져 있다. 기로회 전경을 묘사하고 있는 ‘북원수회도’는 건물 내부에 참석자와 수행한 자제들이, 건물 외부에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과 참석자를 모시고 온 가마꾼 등이 표현되어 있다. 좌목에는 기로회 참석 대상이 나이순으로 적혀 있다. 이광적, 최방언(崔邦彦), 한재형(韓載衡), 이세유(李世瑜), 박진귀(朴震龜), 남택하(南宅夏), 이지성(李之星), 김상현(金尙鉉) 등 15명으로 이 중 박견성, 성지행(成至行), 김창국(金昌國), 이항번(李恒番)은 건강 문제 등으로 불참하였다. 좌목에 뒤이어 좌목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시가 이어지는데 화첩에 실린 시는 모두 맨 앞에 등장하는 박견성의 시를 차운한 것이며 나이나 관직 고하순이 아니라 모임에 앉은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화가인 정선의 초기작이자 기록화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며, 17세기까지 축(軸)으로 제작되던 기로회도가 18세기 초반에 화첩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다. 또한 숙종 후반기에 활동한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과 관련된 시문들이 함께 성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다.

도슨트 이야기

이 화첩은 1716년, 과거에 급제한 지 60년을 맞은 이광적이 기념 잔치를 치른 뒤, 같은 동네 노인들을 모아 기로회를 연 것을 기념해 만든 서화첩이에요. 과거 급제 60주년이라니,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하고 경사스러운 일인지 짐작이 가지요. 이 모임은 정선의 외삼촌이 주도해 열렸답니다.

맨 앞에 실린 〈북원수회도〉는 정선의 외사촌형이 쓴 발문 덕분에 정선의 그림임이 밝혀졌어요. 건물 안에는 참석한 노인들과 자제들이, 밖에는 음식을 나르는 사람과 가마꾼이 그려져 잔치의 정경이 생생합니다. 이어지는 좌목에는 참석자들의 이름이 나이 순으로 적혀 있어요.

이 작품은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화가 정선의 초기작이자 기록화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해요. 또 17세기까지 두루마리로 만들던 기로회도가 18세기 초에 화첩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알려 주어,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깊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위에서 내려다본 잔치마당과 건물을 비스듬히 위에서 굽어보는 시점이에요. 덕분에 담장 안 모든 일이 한눈에 펼쳐져 보이지요.
  • 마루에 앉은 노인들가운데 큰 대청 안에 흰옷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어요. 과거 급제 예순 해를 맞아 모인 그 노인들의 자리랍니다.
  • 오가는 사람들마당에는 음식을 이거나 든 사람들과 분주히 오가는 이들이 작게 점점이 흩어져 있어요. 잔치의 들썩이는 분위기가 전해지지요.
  • 둘러싼 나무와 담집 둘레를 키 큰 나무들과 낮은 돌담이 빙 두르고 있어요. 푸르고 누런 잎새들이 가을 무렵의 정원을 감싸 줍니다.
  • 오른쪽 글씨화면 오른편 끝에 또박또박 적힌 글씨와 붉은 도장이 보여요. 이 그림이 누구의 솜씨인지 일러 주는 자리예요.

이 너른 마당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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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젊은 붓

〈북원수회도첩〉은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의 초기작이자 기록화예요. 1716년,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해를 맞은 이광적이 회방연을 치른 뒤, 같은 동네 노인들을 장의동 집 북원에 모아 기로회를 연 것을 기념해 만든 서화첩입니다. 이 모임은 정선의 외삼촌 박견성이 주도해 열렸어요.

과거 급제 예순 해의 잔치

첩은 모두 스무 장, 마흔 면으로 이루어졌는데, 맨 앞에 〈북원수회도〉가 실리고 참석자의 명단과 시문, 발문이 뒤따릅니다. 정선의 외사촌 형 박창언이 쓴 발문에 이 그림이 정선의 솜씨임이 밝혀져 있어요. 그림에는 건물 안에 모인 참석자와 자제들이, 건물 밖에는 음식을 나르는 사람과 가마꾼까지 정성껏 담겼습니다. 명단에는 이광적을 비롯한 노인들이 나이순으로 적히고, 그 뒤로 박견성의 시를 차운한 시들이 모임에 앉은 순서대로 이어져요.

축에서 화첩으로

이 작품은 진경산수의 대가 정선의 이른 솜씨를 보여 줄 뿐 아니라, 17세기까지 두루마리로 만들어지던 기로회도가 18세기 초에 화첩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알려 주는 자료예요. 숙종 후반기에 활동한 인물들의 시문이 함께 엮여, 미술사적 가치와 더불어 역사적 가치도 높습니다.

관람 포인트

정선이 진경산수로 이름을 떨치기 전, 한 동네의 잔치를 어떻게 화폭에 담았는지 살펴보세요. 건물 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의 분주함 속에, 한 시대 노인들의 영예와 정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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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하늘에서 굽어본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진경산수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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