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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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진찬도

작가 미상

문화권
Korean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작품 소개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봉수당진찬도>는 8폭으로 구성된 ≪화성행행도병≫ 중 한 폭이다. ‘봉수당진찬’이란 1795년의 현륭원 원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을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을 그린 것인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혜경궁이 이 진찬에 참여했던 것은 실로 뜻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화성능행도병》은 정조가 1795년(정조19) 윤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 동안 화성(華城)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행행(行幸)했을 때의 주요 행사를 그린 8폭 병풍이다. 이 도병은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낙남헌방방도(落南軒放榜圖)>,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능행도 병풍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서, 양식적 특징은 물론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후대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1970년대 한 재일교포가 동국대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단폭이지만, 작품성만을 두고 판단할 때에는 어떤 8폭 병풍이나 다른 낱폭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장황은 현재 리움 소장 <환어행렬도>와 비단의 문양이나 표구방식이 동일하며, 크기도 대동소이한데 이 점 역시 주목된다. 필법에서는 이 두 점 사이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기록화 한 점을 그리는데 대체로 3-4명의 화원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이 두 점은 같은 8폭 병풍에서 갈라져 나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현재 작품의 상태도 양호하고 질적 수준이 뛰어나다. 화면구성이나 설채와 원근법 사용방식 등에 있어 18세기말-19세기 초의 궁중기록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도슨트 이야기

이 그림은 정조가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다녀온 행차의 주요 장면을 담은 8폭 병풍 가운데 한 폭이에요. '봉수당진찬'이란 그 행차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그린 것인데, 여러 어려움에도 혜경궁이 이 잔치에 참여한 일은 그 자체로 뜻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8폭 병풍은 화성의 문묘에 참배하는 장면부터 과거 급제자 발표, 회갑 잔치, 양로연, 야간 군사훈련, 활쏘기, 돌아오는 행렬, 한강의 배다리를 건너는 장면까지 두루 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이 〈봉수당진찬도〉는 단 한 폭이지만, 작품성만 놓고 보면 다른 어떤 폭보다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습니다.

비단의 무늬와 표구 방식, 크기가 리움미술관 소장 〈환어행렬도〉와 거의 같아, 본래 같은 8폭 병풍에서 갈라져 나왔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해요. 보존 상태가 좋고 질적 수준이 빼어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궁중 기록화의 양식을 잘 보여 주는 명작입니다.

이렇게 보세요
  • 두 개의 차일화면 위와 아래에 큰 흰 차일(천막)이 펼쳐져, 잔치의 두 무대를 나눠요. 위쪽 차일 안엔 비워 둔 자리가 행사의 중심임을 일러 줍니다.
  • 좌우 대칭의 질서마당 양옆으로 인물들이 거울처럼 가지런히 마주 앉았어요. 이 반듯한 대칭이 궁중 잔치의 엄격한 격식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 색의 줄붉고 푸른 관복 입은 인물들이 줄줄이 이어져 화면 가득 색의 띠를 이뤄요. 수많은 인물을 일일이 작게, 그러나 정연하게 그렸죠.
  • 위에서 굽어본 마당마당 전체를 한눈에 담으려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시점이에요. 차일과 건물, 줄지은 사람들이 한 화면에 빠짐없이 펼쳐집니다.

위쪽 차일 안에 비워 둔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한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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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잔치

1795년 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화성 현륭원으로 여드레에 걸친 대규모 행차에 나섰어요. 그 가운데 가장 뜻깊은 행사가 바로 봉수당에서 열린 진찬, 곧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한 잔치였습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함께 견딘 혜경궁이 예순한 살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그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깊은 사연을 품습니다.

여덟 폭에 담은 행차

이 그림은 본래 정조의 화성 행차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화성능행도병》의 한 폭이에요. 성묘에 절을 올리는 〈화성성묘전배도〉, 과거 급제자를 발표하는 〈낙남헌방방도〉, 노인을 위한 잔치 〈낙남헌양로연도〉, 밤 군사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 한강에 배다리를 놓아 돌아오는 〈한강주교환어도〉 등으로 이어지는 이 병풍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한 폭에 깃든 솜씨

동국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이 〈봉수당진찬도〉는 1970년대 한 재일교포가 기증한 것이에요. 비록 병풍에서 떨어져 나온 한 폭이지만, 작품성만 놓고 보면 어느 낱폭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평을 받습니다. 흥미롭게도 리움미술관의 〈환어행렬도〉와 비단 문양이며 표구 방식, 크기가 거의 같아, 본래 한 병풍에서 갈라져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요. 당시 이런 기록화 한 점에는 보통 서너 명의 화원이 함께 매달렸습니다.

관람 포인트

화면 구성과 색채, 원근법을 다루는 방식에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궁중기록화의 양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잔치의 격식과 인물들의 자리 배치를 따라가다 보면,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마음과 한 시대의 의례가 어떻게 한 화면에 정성껏 옮겨졌는지 느껴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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