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문사 신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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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신중도(普門寺 神衆圖)는 불교와 불교를 믿는 국가와 개인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도설한 불화로 고종 4년(1867년)에 그려졌다.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다.
보문사에 전해 오는 불화예요. '신중(神衆)'이란 불법과 그것을 따르는 이들을 지켜 주는 여러 수호신을 가리키는데, 이 그림은 화엄신중을 한자리에 도설하고 있지요.
1867년, 조선 고종 때 그려진 작품이에요. 여러 신장(神將)이 위엄 있게 늘어선 화면은 절을 찾는 이들을 지켜 준다는 믿음을 담고 있지요. 색과 구성에서 조선 후기 불화의 격식을 잘 보여 줘요.
신앙과 예술이 어우러진 19세기 서울 지역의 불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답니다.
- 빼곡한 신들 — 화면 가득 수많은 신장과 천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들어차 있어요. 빈틈 없이 채워진 그 무리에서, 절을 지킨다는 든든한 위세가 느껴지지요.
- 붉은 기운 — 적색과 녹색이 화면을 휘감는데, 그중에서도 짙은 붉은빛이 유독 강해요. 다소 가라앉은 그 색조가 19세기 중반 불화의 분위기를 일러 주는 단서랍니다.
- 가운데 검은 광배 — 한복판 인물 뒤로 둥근 검은 두광이 무겁게 자리해, 그 앞 동진보살을 우뚝 떠받쳐요. 빽빽한 인파 속에서 시선이 자연히 그리로 모이지요.
- 온화한 얼굴들 — 위엄 가득한 수호신들인데도 표정만큼은 하나같이 둥글고 인자해요. 투구와 무기로 무장한 신장들 사이에서 그 부드러운 낯빛이 도드라지죠.
- 표구의 흔적 — 화면 둘레로 낡고 빛바랜 비단 테두리가 둘러 있어, 오랜 세월 절집에 걸려 온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비쳐요.
이 많은 얼굴 가운데, 당신의 눈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닿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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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지키는 신들의 초상
서울 성북동 보문사에 전해 오는 이 「신중도(神衆圖)」는 1867년, 조선 고종 4년에 그려진 불화예요. '신중'이란 본디 인도에서 불교가 성립되기 전부터 있어 온 토속신들이, 불교 안으로 받아들여지며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존재들을 가리켜요. 그러니 이 그림은 한 분의 부처를 모신 그림이 아니라, 절과 절을 찾는 이들을 지켜 주는 여러 신들이 한자리에 모인 단체 초상화인 셈이지요.
불화에는 부처를 모신 상단, 보살과 신중을 모신 중단, 그 아래 하단이라는 삼단의 체계가 있는데, 신중도는 그 가운데 중단에 해당해요. 그래서 신중단(神衆壇)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절집의 위계 속에서 이 그림이 어디쯤 놓이는지를 알고 보면, 화면의 짜임이 한결 또렷이 눈에 들어와요.
역삼각형으로 짜인 화면
이 그림은 크게 위아래 두 단으로 나뉘어 있어요. 윗단에는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을 중심으로 천인(天人)들이 늘어서 있고, 아랫단에는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여러 신장(神將)들이 자리해요. 화면 위쪽 좌우에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이 놓이고, 그 가운데 아래로 동진보살이 내려와, 세 신장이 거꾸로 선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지요. 조선 후기 신중도 가운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랍니다.
화면 한복판을 차지한 동진보살은 통통하고 인자한 얼굴로 그려졌어요. 그 왼편의 산신은 부채를 든 채 빙긋 미소를 머금고 있고, 오른편의 성군(星君)과 더불어 모두 화면의 왼쪽 아래를 가만히 바라보지요. 위엄 있는 수호신들이지만, 그 표정만큼은 하나같이 온화하답니다. 색은 녹색과 적색을 주된 가락으로 삼았는데, 그 색조가 다소 탁해진 점이 오히려 19세기 중반 이후라는 제작 시기를 일러 주는 단서가 돼요.
상궁의 시주, 그리고 흥국사의 화승
이 불화에는 화기(畵記), 곧 그림에 얽힌 사연을 적은 기록이 함께 남아 있어요. 덕분에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모셨는지를 엿볼 수 있지요. 기록에 따르면 한 상궁(尙宮)이 시주가 되어 불화를 조성할 경비를 마련했고, 그 공덕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해요. 조선 후기 사찰의 불사에는 이렇게 상궁을 비롯한 궁중 여인들의 시주가 유난히 자주 보인답니다. 그 정성이 모여 비로소 한 점의 불화가 태어난 거예요.
그림을 그린 화승의 이름은 화기에 또렷이 남아 있지 않아요. 다만 같은 해 보문사에서 함께 조성된 지장시왕도가 수락산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경선당 응석(應釋)의 솜씨라는 점에서, 이 신중도의 밑그림을 그린 이 역시 경선 응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요. 응석은 19세기 후반을 대표하던 큰 화승이었으니, 이 그림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도 눈여겨볼 만해요. 훗날 1887년에 그려진 서울 미타사 대웅전 신중도가 이 그림과 구도가 똑같아, 같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려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을 위아래 두 단으로 갈라 보세요. 윗단의 제석천왕과 대범천왕, 아랫단 한가운데 동진보살, 이 셋이 어떻게 거꾸로 선 삼각형을 이루는지 눈으로 따라가 보는 거예요. 다음으로 신장들의 표정을 살펴보세요. 위엄 가득한 수호신인데도 동진보살은 인자하고, 부채를 든 산신은 미소를 짓고 있답니다. 그 온화한 얼굴들이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함께 짚어 보세요. 모두 화면 왼쪽 아래로 시선을 모으고 있어요. 끝으로 녹색과 적색이 주조를 이루는 색감을 눈여겨보세요. 다소 가라앉은 그 빛깔 속에, 절을 지켜 달라는 옛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한 상궁의 정성이 고스란히 스며 있답니다.

지옥의 중생까지 구제하려는 보살, 저승의 열 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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