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상
Female Nude Figure
작가 미상
- 분류
- Paintings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裸体婦人像』 は、日本の洋画家黒田清輝が1901年(明治34年)に描いた絵画。裸体画。1901年(明治34年)の秋に開催された白馬会第6回展に出展され、初めて警察が展覧会において裸体画の取り締まりを行った「腰巻き事件」を引き起こした。カンヴァスに油彩。縦116.2センチメートル、横89.0センチメートル。『裸体婦人』 『西洋婦人像』 『西洋婦人図』とも。新聞報道では『裸美人』とも呼ばれる。東京都の静嘉堂文庫美術館に所蔵されている。
구로다 세이키가 1901년에 그린 누드화예요. 그런데 이 그림은 일본 미술사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어요.
백마회 전시에 걸렸을 때, 경찰이 처음으로 누드화를 단속하며 그림 아래쪽을 천으로 가리게 한 이른바 '코시마키(허리띠) 사건'을 일으켰지요. 서양에서는 당연하던 누드화가 당시 일본에선 큰 논란거리였음을 보여 주는 작품이에요. 도쿄 세이카도 문고미술관에 있습니다.
- 자세 — 두 무릎을 접고 곰 가죽 위에 앉은 여인이 고개를 살짝 숙여, 부드러운 곡선이 화면 한가운데를 가득 채워요.
- 빛 — 밝은 살빛에 떨어지는 빛이 가슴과 배의 둥근 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번져, 풍만한 몸의 부피감을 살려 줘요.
- 배경 — 등 뒤로 드리운 붉은 자줏빛 천에는 잎이 큰 수초 무늬가 어른거리는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풍 디자인이지요.
- 대비 — 따뜻한 살빛과 짙은 자줏빛 배경이 맞부딪쳐, 여인의 몸이 화면에서 도드라져 솟아오르는 듯해요.
고개를 숙인 이 여인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생각에 잠긴 걸까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한 폭의 누드가 일으킨 소동
이 「나체부인상(裸体婦人像)」은 구로다 세이키가 1901년에 그린 누드화예요. 세로 116.2센티미터, 가로 89센티미터의 캔버스에 유채로, 한 여인이 실내에서 곰 가죽 위에 앉은 모습을 담았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단순한 누드화에 그치지 않고, 일본 미술사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문제작이 되었어요. 바로 그해 가을 백마회 제6회전에 걸렸을 때, 처음으로 경찰이 전시장의 누드화를 단속한 이른바 '허리띠 사건(腰巻き事件)'을 불러왔기 때문이지요.
구로다가 누드화를 그려 전시에 내건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었어요. 1896년 도쿄미술학교에 서양화과가 생기고 그 지도교관이 된 구로다는, 일본 사회에 서양 미술을 뿌리내리게 하려면 무엇보다 누드화를 그려 세상에 선보여야 한다고 믿었어요. 서양에서 누드란 미술의 기본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그림은 1901년 초 파리 유학 중 아틀리에에 모델을 불러 그린 작품으로, 세 명의 모델을 11주 동안 두고 저마다 가장 보기 좋은 몸과 얼굴과 머리카락을 골라 한 인물로 빚어낸 것이라고 해요.
곰 가죽 위의 여인
그림 속 여인은 실내에서 검은 곰 가죽 위에 앉아 있어요. 왼쪽 다리는 구부리고 오른쪽 다리는 살짝 뻗은 채 편안히 쉬는 자세이지요. 상체는 정면을 향하되 얼굴은 조금 숙이고 있어요. 밝은 색조로 칠해진 여인은 풍만한 몸매에, 윤기 흐르는 금발을 지녔어요. 미술평론가 구라야 미카는, 여인의 몸에 복슬복슬한 곰 가죽이 닿는 그 감촉이 보는 이의 촉각을 자극하도록 꾸며진 장치라고 풀이하기도 했지요.
배경의 천에는 커다란 잎을 가진 수초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풍의 디자인이에요. 천의 바탕색은 붉은 자줏빛이고요. 구로다 자신은 누드에서 가장 그리기 어렵고 솜씨가 드러나는 곳이 허리 언저리 관절 부분이라며, 바로 그 대목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어요. 구로다의 스승 라파엘 콜랭도 이 그림을 보고는 높이 평가하며, 어째서 이 작품을 파리 만국박람회에 내지 않았느냐고 아쉬워했다고 전해요.
허리띠 사건
그러나 이 그림이 일본에 걸리자 사정이 달라졌어요. 1901년 백마회 제6회전이 열리고 작품 진열이 끝난 날, 시모타니 경찰서장이 점검차 전시장을 찾았어요. 그는 풍속을 어지럽히고 관람객의 정욕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누드화는 국부를 드러내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일렀지요. 백마회는 곧 다갈색 슈미즈 같은 천으로 누드상의 허리 아래를 가렸어요. 구로다의 이 그림을 비롯해 다른 누드 작품과 그리스 신상에까지 천이 둘러졌답니다.
이 조치는 서양 미술을 일본에 널리 알리려던 구로다와, 공공의 질서를 내세운 경찰이 맞선 끝에 나온 타협안이었어요. 그런데 천을 두른 일이 오히려 더 큰 소동을 불렀지요. 천을 들춰 가려진 부분을 보려는 관람객이 줄을 이었고, 급기야 작품 아래쪽에 판자 울타리까지 세웠어요. 신문들은 대체로 경찰의 조치를 비웃었어요. 한 신문은 '나체가 풍기를 어지럽힌다면 어째서 누드화 전시 자체를 금하지 않는가'라고 꼬집었지요. 가인 요사노 뎃칸은 예술을 모르는 정부에 분개했고, 소설가 모리 오가이는 빈정대는 말을 남겼답니다.
이 사건은 일본 누드화의 흐름을 바꿔 놓았어요. 이후 화가들은 전라(全裸)를 그려 발표하는 일이 금기시됨을 깨닫고, 하반신을 천으로 가리거나 아예 상반신만 그리는 반라(半裸)의 그림을 주로 내놓게 되었지요. 한 폭의 누드가 일으킨 파문이, 한 시대의 그림 그리는 방식까지 바꿔 놓은 셈이에요.
관람 포인트
먼저 여인이 앉은 검은 곰 가죽을 눈여겨보세요. 부드러운 살결과 거친 모피가 맞닿는 그 감촉이, 보는 이의 촉각마저 건드리도록 꾸며진 장치랍니다. 구로다가 온 힘을 쏟았다는 허리 언저리 관절 부분도 함께 살펴보세요. 다음으로 배경의 천을 보세요. 커다란 잎의 수초 무늬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풍 디자인이고, 붉은 자줏빛 바탕이 여인의 밝은 살빛을 한층 도드라지게 해요. 끝으로, 이 그림 앞에서 '허리띠 사건'을 떠올려 보세요. 백마회 전시에서 허리 아래에 천이 둘러지고 판자 울타리까지 세워졌던 그 소동을 그려 보면, 서양에선 당연하던 누드 한 점이 당시 일본에선 얼마나 낯설고 뜨거운 논쟁거리였는지가 새삼 다가올 거예요.

고대를 향한 동경을 서양화로, 메이지 낭만주의.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