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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가와의 눈

Fukagawa no Yuki

기타가와 우타마로

분류
Paintings
지역
동아시아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深川の雪(ふかがわのゆき)は、江戸時代の浮世絵師・喜多川歌麿が晩年描いたとされる浮世絵。肉筆の掛軸画で、寸法は縦198.9cm×横341.1cmと浮世絵史上最大。江戸・深川の料理茶屋の2階座敷で辰巳芸者(たつみげいしゃ)や、支度をする女性たちに幼い男の子1人を含む総勢27名が描かれている。享和2年から文化3年(1802-06年)頃、下野国栃木宿の豪商であった善野伊兵衛の依頼で描かれたと伝えられる。現在は岡田美術館所蔵。落款が欠けていることなどから一部で真贋論争が燻っている。

도슨트 이야기

우키요에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가 만년에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육필 괘축이에요. 세로 약 2미터, 가로 약 3.4미터로, 우키요에 역사상 가장 큰 그림이지요.

눈 내린 에도 후카가와의 요릿집 2층 좌식방에, 게이샤와 시중드는 여인들, 어린 남자아이까지 모두 스물일곱 명이 어우러져 있어요. 화사한 옷차림과 느긋한 분위기 속에 에도의 풍류가 가득하지요. 지금은 오카다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큰 화면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에 스물일곱 명이 흩어져 저마다 다른 몸짓을 하고 있어요. 한 사람씩 천천히 헤아려 보세요.
  • 2층 좌식방난간 두른 다다미방이 무대예요. 마루에 둘러앉거나 무릎 꿇은 여인들의 자세가 제각각이라 분주한 좌중의 공기가 느껴지죠.
  • 눈 쌓인 정원왼쪽 아래 소나무 가지에 흰 눈이 소복이 얹혀 있어요. 푸른 하늘빛 여백이 차고 맑은 겨울 공기를 전해요.
  • 화사한 옷붉고 푸른 기모노의 무늬가 화면을 수놓아요. 미인화의 대가다운 섬세한 옷차림과 결 고운 살결을 눈여겨보세요.
  • 돌아보는 여인오른쪽 위, 몸을 숙여 큰 짐을 짊어진 여인과 그 앞에서 검은 상자를 든 채 돌아보는 여인을 찾아보세요. 이곳이 후카가와임을 알려 주는 열쇠랍니다.

이 방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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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역사상 가장 큰 그림

에도 시대 우키요에의 거장 기타가와 우타마로가 만년에 그렸다고 전해지는 육필 괘축이에요. 세로 198.9센티미터, 가로 341.1센티미터로, 우키요에 역사상 가장 큰 그림이지요. 판화가 아니라 붓으로 직접 그린 대작이랍니다.

눈 내린 에도 후카가와의 어느 요릿집 2층 좌식방이 무대예요. 다쓰미 게이샤들과 시중드는 여인들,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 한 명까지 모두 스물일곱 명이 화면 안에 어우러져 있어요. 이 그림이 '후카가와'를 그린 것임을 알려 주는 단서가 재미있는데, 화면 오른쪽 위에서 큰 자루를 짊어진 채 몸을 숙인 여인이 그 열쇠예요. 손님과 함께할 침구를 게이샤를 둔 집에서 요릿집으로 나르는 '가요이 야구(通い夜具)'라는, 당시 후카가와에만 있던 독특한 풍습을 그린 것이지요. 그 앞에서 검은 샤미센 상자를 든 채 돌아보는 여인은 본래 남자가 맡던 '하코야' 역할인데, 미인화의 대가답게 우타마로는 이를 여인으로 그려 넣었답니다.

'설월화' 삼부작의 마지막 한 폭

이 그림은 우타마로의 '설월화(雪月花)' 삼부작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시나가와의 달', '요시와라의 꽃'과 짝을 이루는 '눈'의 그림이지요. 다만 세 작품은 제작 시기가 크게 벌어져 있고 크기도 들쭉날쭉해서,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구상되었는지는 의문이 남아요. 그런데 '시나가와의 달' 화면 속 방 난간에 걸린 글씨 액자에 오타 난포가 지은, 눈과 달과 꽃을 예고하는 교카(狂歌)가 적혀 있어, 셋의 인연을 넌지시 일러 주기도 한답니다.

세 작품 모두 낙관과 인장이 없다는 점이 큰 수수께끼예요. 이는 도치기의 유력자 젠노 가문을 비롯한 여러 후원자가 관여해, 그림이 거의 마을 공유물처럼 다뤄졌기 때문으로 추정돼요. 축제 같은 특별한 행사 때 절이나 신사의 넓은 공간에 내걸렸다면, 오히려 작가 이름을 또렷이 밝히는 것이 거추장스러웠을 테니까요. 실제로 화면 속 한 여인의 옷에는 젠노 가문의 가문(家紋)인 '구마이자사' 무늬가 그려져 있답니다.

만년의 솜씨와 떠도는 운명

이 그림에 쓰인 재료에도 만년 우타마로의 자취가 남아 있어요. 종이는 중국에서 수입한 최대 규격의 선지(宣紙)인 '조니센'으로 추정되고, 푸른색에는 수입품이라 구하기 어려웠던 '하나곤조(스말트)'가 쓰였어요. 적외선 사진으로 밑그림을 살펴보니 완성작과 거의 차이가 없었는데, 만년에 이르러서도 우타마로의 붓 솜씨가 흐트러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지요. 화면 곳곳에는 당시 최첨단 화장법이던 '사사이로베니'도 한껏 쓰였답니다.

이 그림의 행방은 한동안 묘연했어요. 도치기를 떠나 파리의 미술상 지크프리트 빙의 손에 들어갔다가, 1939년 가오 창업자의 아들인 수집가 나가세 다케오가 일본으로 가져왔지요. 나가세는 같은 가게에 있던 '요시와라의 꽃'보다, 구도가 풍부하고 여인들의 갖가지 몸짓이 즐겁다는 이유로 '눈'을 골랐다고 해요. 전후 몇 차례 전시된 뒤 다시 행방이 끊겼다가, 2012년 일본 국내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오카다 미술관에 있답니다. 그 공백의 세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전체를 한눈에 담아 보세요. 가로 3.4미터의 큰 화면에 스물일곱 명이 흩어져 저마다 다른 몸짓을 하고 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와 표정을 천천히 헤아려 보는 거예요. 다음으로 오른쪽 위, 큰 자루를 짊어진 여인을 찾아보세요. 그가 바로 이곳이 후카가와임을 알려 주는 열쇠랍니다. 그 앞에서 샤미센 상자를 들고 돌아보는 여인도 함께 보세요. 여인들의 입술도 눈여겨보세요. 당시 최신 유행이던 화장법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낙관이 없다는 점을 떠올려 보세요. 이름 하나 남기지 않은 이 거대한 그림이, 한 마을이 함께 아끼던 보물이었음을 헤아려 보는 거예요.

관련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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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뇌신도
오가타 고린

금병풍을 가르는 바람의 신과 천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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