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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발트 전투

Battle of Grunwald

얀 마테이코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Battle of Grunwald is a painting by Jan Matejko depicting the Battle of Grunwald and the victory of the allied Crown of the Kingdom of Poland and Grand Duchy of Lithuania over the Teutonic Order in 1410. The canvas dates to 1878 and is one of the most heroic representations of the history of Poland and Lithuania. It is displayed in the National Museum in Warsaw.

도슨트 이야기

1410년 여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그룬발트 들판에서 튜턴 기사단을 무너뜨렸습니다. 폴란드가 분할되어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1878년, 얀 마테이코는 이 승리를 거대한 캔버스에 되살렸어요. 그는 1871년부터 자료를 모으고, 1877년에는 직접 전투 현장을 답사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 '빙의된 사람 같았다'고 했을 만큼 혼을 쏟아부었지요.

화면 한가운데는 붉은 옷을 입고 칼을 치켜든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가 서 있고, 그 아래로 튜턴 기사단장 울리히 폰 융긴겐이 쓰러지는 순간이 담겨 있어요. 마테이코는 역사 기록뿐 아니라 상징도 함께 그렸습니다. 기사단장을 찌르는 창은 성 마우리치오의 창으로, 기독교 군주에게 칼을 들이댄 자에 대한 응보를 뜻했어요.

그림은 완성되자마자 크라쿠프 시의회로부터 왕홀을 받을 만큼 환영받았고, 파리 전시에서는 프랑스 비평가가 '하루 만에 볼 수 없는 그림, 여드레를 들여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점령기에 이 그림은 '가장 없애야 할 그림' 목록 1위에 올랐어요. 괴벨스는 현상금으로 천만 마르크를 걸었고, 위치를 아는 폴란드 지하 대원들은 고문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지요.

그림은 루블린 근방 어딘가에 숨겨진 채 전쟁을 버텼고, 1949년 바르샤바 국립미술관에 돌아왔습니다. 한 나라의 자존심을 담은 그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 이 전투화를 단순한 역사 기록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보세요
  • 가로로 긴 아수라장옆으로 길게 뻗은 화면 가득 사람과 말, 창과 칼이 뒤엉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격전이 펼쳐져요.
  • 붉은 옷의 중심화면 한복판, 붉은 옷을 입고 칼을 치켜든 사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싸움의 중심을 잡아 줘요.
  • 흰 말의 죽음왼쪽, 흰옷 입은 기사가 흰 말 위에서 창에 찔려 뒤로 넘어가는 순간이 또 하나의 시선을 붙들지요.
  • 하늘의 인물아수라장 위 왼편 하늘에 빛에 싸인 한 인물이 떠 있어, 땅의 혼란을 조용히 굽어보는 듯해요.
  • 번득이는 금속갑옷과 칼날, 깃대 끝이 곳곳에서 차갑게 번득여, 먼지 자욱한 화면에 날카로운 긴장을 더해요.

이 뒤엉킨 한복판에서, 당신은 어느 인물이 이기고 있다고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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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에 담긴 민족의 승리

1410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연합군이 독일 기사단을 크게 무찌른 그룬발트 전투. 얀 마테이코는 그 역사적 승리를 거대한 화폭에 담아냈어요. 그는 1871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해 이듬해 붓을 들었고, 1878년에야 작품을 끝마쳤답니다. 완성 직후 마테이코는 크라쿠프 시 의회로부터 홀을 받았어요. 가장 존경받는 폴란드 화가라는 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지요. 그림은 그해 바르샤바의 한 개인에게 팔렸고, 여러 국제 전시를 거친 뒤 1902년 미술진흥협회가 사들여 바르샤바에 내걸었어요.

이 작품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가장 영웅적인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꼽혀요. 한 프랑스 비평가는 1879년 파리에서 이 그림을 보고,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라 제대로 음미하려면 여드레는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지요.

화면 한복판의 두 죽음과 한 사람

그림 중앙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붉은 옷을 입고 칼을 치켜든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예요. 마테이코는 그를 사촌인 폴란드 왕 야기에우워보다 더 두드러진 자리에 세웠어요. 야기에우워는 오른쪽 위편에서 말을 탄 채 멀찍이 보일 뿐이지요. 이렇게 비타우타스를 앞세움으로써, 화가는 폴란드에 리투아니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두 나라의 협력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강조했답니다.

또 하나의 중심 장면은 독일 기사단 총장 울리히 폰 융잉엔의 죽음이에요. 흰 기사단 복장에 흰 말을 탄 그가, 이름 없는 두 인물의 손에 쓰러지고 있지요. 한 사람은 '성 마우리치오의 창'을 쥐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 군주에게 칼을 든 데 대한 응징을 암시한다고 해석되기도 해요. 다만 현대 학자들은 융잉엔이 실제로는 기병끼리의 결투에서 전사했으리라 보고 있답니다. 그 밖에도 화면 곳곳에는 폴란드 깃발을 든 기사, 포로로 붙들린 적장, 하늘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폴란드의 수호성인 성 스타니스와프까지, 수많은 인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요.

나치가 가장 탐낸 그림

이 그림에는 험난한 운명도 따라다녔어요. 마테이코는 본래 분할되어 나라를 잃은 폴란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우려 이 작품을 그렸어요. 게르만화 정책으로 폴란드 문화를 짓누르던 비스마르크를 향한 경고이기도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은 이 그림을 가장 탐냈답니다. 폴란드 문화의 흔적을 조직적으로 없애려던 그들의 '수배' 목록 맨 위에 이 작품이 올랐고, 괴벨스는 무려 1천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내걸었어요.

폴란드 지하 저항 조직원 여럿은 그림이 숨겨진 곳을 끝내 발설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고문 끝에 처형당하기도 했어요. 그림은 루블린 인근에 숨겨진 채 전쟁의 세월을 견뎌 살아남았지요. 전후 복원을 거쳐 1949년부터 바르샤바 국립박물관에 자리 잡았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붉은 옷에 칼을 치켜든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를 화면 한복판에서 찾아보세요. 정작 폴란드 왕 야기에우워는 오른쪽 위 멀찍이 물러서 있다는 점이 흥미롭답니다. 다음으로 흰 옷에 흰 말을 탄 기사단 총장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세요. 그를 둘러싼 창과 칼이 이 거대한 화면의 또 다른 축이지요. 하늘로도 한 번 눈을 들어 보세요. 아수라장 위로 폴란드의 수호성인이 전장을 굽어보고 있답니다. 마지막으로는 한 발 물러서서 화면 전체를 보세요. 이 그림은 우리를 전투 바깥에서 구경하게 두지 않아요. 뒤엉킨 인물들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지요. 마테이코 자신도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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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가 한창인 궁정에서 홀로 시름에 잠긴 광대, 나라의 운명을 먼저 내다본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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