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Paris Street; Rainy Day
- 분류
-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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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프랑스어: Rue de Paris, temps de pluie, 영어: Paris Street; Rainy Day)은 1877년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형 유화 작품이자 대표작으로, 프랑스 파리 북부의 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담았다. 카유보트는 생전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친구이자 후원가로서 본 작품 역시 인상파 작품으로 분류되지만, 인상파의 기본 표현이었던 모호하고 널찍한 붓칠보다는 뚜렷한 선에 의존하는 등 사실주의에 가까운 화풍으로 차별화된 작품이다.
1877년 파리, 카유보트는 자신이 사는 8구의 교차로를 오랫동안 관찰했습니다. 루 드 튀랭, 루 드 모스쿠, 루 클라페롱이 만나는 그 네거리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든 사람들이 젖은 포석 위를 가로질렀어요.
그는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인물들의 자세를 다듬고, 원근을 계산하고, 건축의 선을 정리하면서요. 완성된 캔버스는 212×276센티미터로 아주 컸고, 붓질은 1.5센티미터까지 굵게 올렸습니다. 화면은 두 개의 소실점을 향해 수렴하며 깊이를 만들고, 초록빛 가로등 기둥이 정확히 화면을 절반으로 나눕니다.
전경의 부르주아 커플은 우산 아래 느긋한 자세로 화면 바깥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뒤에 있는 24명의 인물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 않습니다. 우산들이 저마다 공간을 점유하고, 빗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서도 고요합니다. 미술사가 메리 모튼은 이 커플이 오스만 파리의 '무표정함과 격식과 특권 의식'을 체현한다고 표현했어요.
이 그림이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됐을 때, 비평가들은 사진과 같은 사실성에 놀랐습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전시의 걸작'이라 불렀고, 또 어떤 이는 카유보트가 이름만 인상주의자라고 꼬집었어요. 그는 인상주의자였지만 인상주의답지 않은 방식으로 파리를 그렸던 겁니다.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1964년 시카고 미술관이 구입하면서 재조명받았고, 지금은 그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앞장선 남녀 — 화면 오른쪽 앞, 실크해트를 쓴 신사와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한 우산 아래 팔을 맞댄 채 다가와요. 둘의 눈길은 우리 시야 밖 어딘가로 무심히 향하지요.
- 한가운데 가로등 — 화폭 정중앙에 초록 가로등이 우뚝 서 있어요. 이 기둥이 화면을 좌우로 가르고, 왼편 거리는 저 멀리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깊은 공간을 떠받친답니다.
- 번들거리는 포석 — 발밑 젖은 돌바닥이 빛을 받아 번들거려요. 빗줄기는 한 가닥도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젖은 결과 회색 하늘만으로 비 오는 날의 축축함이 그대로 전해지지요.
- 똑같은 건물 — 배경을 채운 석조 건물들이 하나같이 닮은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어요. 오스만의 도시 정비로 새로 닦인 대로 — 반듯하지만 어딘가 서늘한 근대 도시의 얼굴이랍니다.
- 스치는 무심함 — 보행자들이 서로 가까이 스치면서도 좀처럼 눈을 맞추지 않아요. 저마다 우산 속에 고립된 그 서먹함이, 화가가 본 근대 도시의 쓸쓸한 단면이에요.
비 오는 이 거리에서, 당신이라면 어느 인물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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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근대 도시의 한 모퉁이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1877년에 완성한 대작 유화예요. 212.2 곱하기 276.2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화폭에, 비 내리는 파리의 한 교차로를 건너는 사람들이 담겨 있지요. 배경은 오늘날 파리 8구의 더블린 광장으로, 카유보트의 아파트에서 가까운 자리랍니다. 우산을 든 부르주아풍의 보행자 스물네 명이 회색빛 거리에 흩어져 있고, 화면 앞쪽에는 우산을 함께 쓴 한 쌍의 남녀가 시선을 화면 밖 어딘가로 던지고 있어요. 카유보트의 여러 도시 풍경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이끈 파리 개조 시대를 증언하는 그림으로 꼽힌답니다.
오스만의 파리를 그리다
1850년대부터 나폴레옹 3세는 센 지사 조르주외젠 오스만에게 파리의 대대적인 근대화를 맡겼어요. '오스만화'라 불리는 이 사업으로 공원과 광장, 주택이 들어서고 약 137킬로미터에 이르는 대로가 새로 닦였으며, 상하수도와 대중교통도 크게 정비되었지요. 카유보트의 가족도 그 변혁의 한복판에서 8구의 큰 저택으로 옮겨 갔답니다. 그의 그림 상당수가 바로 이 격변의 시대와 맞닿아 있어요. 다만 화가는 이 새 도시를 마냥 찬미하지만은 않았어요. 그의 파리는 어딘가 메마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먹하게 그려졌지요. 똑같이 생긴 석조 건물이 화면을 짓누르듯 차지하고, 보행자들은 서로에게도 주변에도 무심한 채 우산과 빗속에 저마다 고립되어 있답니다.
인상주의이면서 인상주의가 아닌
이 작품은 1877년 4월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였어요. 카유보트는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자신의 유산으로 전시를 후원한 조직자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작 그림은 흐릿한 붓질로 빛의 인상을 좇는 여느 인상주의 작품과는 사뭇 달랐답니다. 도리어 사진처럼 정밀한 사실적 도시 풍경에 가까웠어요. 그 덕에 전시의 대표작으로 널리 찬사를 받았고, 한 평론가는 이 그림을 '전시의 걸작'이라 불렀지요. 다만 비가 오는데도 빗줄기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색이 너무 가라앉았다거나, 원근을 지나치게 다뤘다는 비판도 함께 따랐답니다. 사실 화가는 빗줄기를 직접 그리는 대신, 회색 하늘과 번들거리는 젖은 포석으로 그 촉촉한 공기만을 넌지시 전했어요.
잊혔다가 되살아난 화가
흥미롭게도 카유보트는 말년으로 갈수록 화가로서 잊혀 갔어요. 1880년대부터는 전시에서 물러나 정원 가꾸기와 요트, 우표 수집에 마음을 쏟으며 그림을 부쩍 적게 그렸지요. 그가 남긴 인상주의 컬렉션이 워낙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은 그를 화가보다 후원자이자 수집가로만 기억하게 되었답니다. 이 그림도 오래도록 가족이 간직한 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1964년 시카고 미술관이 이 작품을 사들이면서, 20세기 들어 카유보트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이 붙었지요. 오늘날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앞쪽의 우산 쓴 남녀에게 눈을 두세요. 둘은 서로 팔을 맞댄 채, 우리 시야 밖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답니다. 미술사가들은 이 남자를 한가로이 거리를 거니는 '플라뇌르'의 전형으로 본다지요. 다음으로 화면 한가운데 우뚝 선 초록색 가로등을 찾아보세요. 이 가로등이 화폭을 좌우로 가르며, 거리가 저 멀리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깊은 공간을 떠받친답니다. 카유보트는 두 개의 소실점을 쓰는 정밀한 원근법으로 이 입체감을 만들어 냈어요. 젖은 포석이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결도 눈여겨보세요. 빗줄기 없이도 비 오는 날의 축축함을 느끼게 하는 화가의 솜씨가 거기 있답니다. 끝으로 보행자들의 표정과 거리를 살펴보세요. 서로 가까이 스치면서도 좀처럼 눈을 맞추지 않는 그 서먹함이, 화가가 본 근대 도시의 쓸쓸한 단면이에요.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과 기다리는 신사 — 살롱이 거부한 현대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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