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시장
The Slave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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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시장》 은 프랑스 예술가 장레옹 제롬이 1866년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남자가 바르바리 노예 무역의 맥락에서 나체의 아비시니아(현재 에티오피아) 여성 노예의 치아를 검사하고 있다.
1867년 파리 살롱에 출품된 이 그림은 발표 직후 비평가 막심 뒤 캉의 시선을 끌었어요. 근동 지역을 직접 여행한 그는 이 장면을 '카이로의 노예 시장에서 포착한 한 장면'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그림 속 아비시니아 여성을 '복종하고, 겸손하고, 체념한 채 서 있다'고 썼어요.
장 레옹 제롬은 19세기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예요. 이 그림에서 한 남자가 누드 상태의 여성 노예의 이를 살피고 있고, 델라브라는 흥정 중개인이 옆에 서 있습니다. 제롬은 1857년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배경으로 비슷한 노예 구매 장면을 그렸어요. 그의 시선이 노예제를 직접 고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방을 이국적 볼거리로 소비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1930년 로버트 스털링 클라크가 이 그림을 구입했고, 1955년부터 클라크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요.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의 극우 정당이 이 그림을 선거 광고에 사용해 클라크 미술관이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은 말이 없어요. 다만 화면 한가운데 서 있는 여성의 자세가, 볼거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묵묵히 보여 줍니다.
- 벌린 입 — 한 남자가 손가락을 여인의 입에 넣어 이를 살펴요. 가축의 건강을 가늠하듯 사람을 검사하는 그 손짓에 이 그림의 섬뜩함이 응축돼 있죠.
- 벌거벗은 가운데 — 옷을 다 벗긴 여인이 화면 한가운데 서 있고, 둘러싼 남자들은 두꺼운 빛깔 옷을 걸쳤어요. 그 차림의 대비가 한 사람의 무방비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죠.
- 체념한 자세 —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저항도 표정도 없이 가만히 서 있어요. 거래의 대상이 되어 버린 한 사람의 무력함이 그 자세에 배어 있죠.
- 매끄러운 솜씨 — 피부와 천, 모래빛 벽이 더없이 정교하게 그려졌어요. 다만 그 빼어난 묘사가 비참한 장면을 보기 좋은 구경거리로 매끈하게 다듬어 버린다는 점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 바닥의 옷가지 — 화면 앞쪽 모래 위엔 벗겨진 옷이 무더기로 던져져 있어요. 방금 전까지 여인이 입고 있었을 그 천 조각이 장면을 더 차갑게 만들죠.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외면하고 싶어지는 곳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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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축처럼 살피는 시장
한 시장의 모래빛 공간에, 벌거벗은 여성 노예가 서 있어요. 그 앞에서 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여인의 입을 벌려 이를 들여다보고 있지요. 마치 가축의 건강을 가늠하듯 사람을 살피는 그 차가운 손짓이,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해요. 프랑스 화가 장레옹 제롬이 1866년에 그린 이 '노예 시장'은,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의 한 장소를 배경으로 바르바리 노예무역의 한 장면을 담고 있어요. 그림 속 여인은 아비시니아, 곧 오늘날 에티오피아 출신 노예로 묘사되었답니다.
이 그림이 1867년 살롱에 걸렸을 때, 근동을 두루 여행했던 평론가 막심 뒤 캉이 이 작품을 평했어요. 그는 배경을 카이로의 노예 시장으로 짚으며, '현장에서 직접 그린 장면'이라고 했지요. 그는 여인을 살피는 노예상을 두고 '온갖 납치와 폭력에 익숙한 산적의 얼굴을 한 자'라 묘사하면서, 정작 팔려 가는 여인에 대해서는 '순종적이고, 겸허하며, 체념한 채,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동성'을 화가가 무척 능숙하게 그려 냈다고 적었답니다. 그 평 자체가,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바라보던 당시의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내지요.
동방을 바라보던 시선
제롬은 동방을 이국적이고 관능적으로 그린 이른바 '오리엔탈리즘' 화가의 대표 격이에요. 이 '노예 시장'은 같은 클라크 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뱀 부리는 사람'과 더불어, 19세기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으로 꼽힌답니다. 그는 노예무역을 다룬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데, 그 출발점이 이 그림보다 앞선 1857년의 '노예를 사다'예요.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를 배경으로 삼아, 사는 이와 파는 이, 그리고 노예 사이의 인종적 차이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제롬의 노예 그림들은 점점 더 구체적인 인종의 대비를 담아 가요. 사실 미술사에서 이른바 '하렘 장면'은 무슬림 사회 여성들의 사적 공간을 다루었고, 거기 남성이 등장할 때면 으레 야만적이거나 성적인 관계 속에 놓이곤 했어요. 이 '노예 시장' 역시 한 남자가 벌거벗은 여성 노예를 살피는 구도를 취하고 있지요. 화면 뒤편에는 벌거벗은 검은 피부의 남성 노예를 살피는 또 다른 매수자들의 모습도 보여요. 제롬의 정교한 묘사 솜씨와는 별개로, 오늘날 이 그림은 바로 그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비판적으로 다시 읽히는 작품이랍니다.
다시 불거진 논란
이 그림이 품은 시선의 문제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당시, 독일의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이 그림을 선거 광고에 사용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지요. 그들은 그림에 '유럽인이여, AfD에 투표하라!', '유럽이 유라비아가 되지 않도록!' 같은 구호를 덧붙였어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는 이 그림이 인종주의적 의도로 쓰였다고 보도했는데, 수염 기른 검은 피부의 남자들이 벌거벗은 백인 여성의 이를 살피는 장면을 암시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지요. 그림을 소장한 클라크 미술관은 AfD의 이러한 사용을 강하게 규탄했답니다.
150여 년 전의 그림 한 점이 오늘날의 정치 선동에 끌려 나온 이 사건은, 한 작품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읽히고 또 위험하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줘요. 이 작품은 여러 손을 거쳐 1930년 로버트 스털링 클라크가 사들였고, 1955년부터 미국의 클라크 미술관 소장품으로 자리하고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한가운데, 남자가 여인의 입을 벌려 이를 살피는 그 손짓에 시선을 두어 보세요. 가축을 고르듯 사람의 몸을 검사하는 그 동작 하나에, 이 그림이 고발하는 비인간성이 응축되어 있답니다. 다음으로 벌거벗은 채 체념한 듯 서 있는 여인의 자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무심한 태도를 견주어 보세요. 한 사람의 존엄이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한 그 차가운 분위기를요. 그리고 제롬의 빼어난 묘사 솜씨, 곧 피부와 천의 질감, 빛의 처리를 눈여겨보세요. 다만 그 정교함이 오히려 이 비참한 장면을 매끄럽고 보기 좋은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점도 함께 떠올려 보는 거예요. 끝으로,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시선과 오늘 우리가 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같은 그림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작품을 지금도 곱씹게 만드는 까닭이랍니다.

엄지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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