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여인들
Women in the Garden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정원의 여인들(프랑스어: Femmes au jardin)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1866년 유화 작품이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 모네의 나이는 26세로, 야외에서 즉석으로 그린 대형화이다.
1866년 여름, 스물여섯 살의 모네는 빌레다블레이에서 빌린 정원에 커다란 캔버스를 세웠어요. 가로세로 2미터가 넘는 이 그림을 야외에서 한꺼번에 그리려면 위쪽 절반을 칠하기가 도저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땅을 파 도랑을 만들고, 캔버스를 도르래처럼 내려 시선 높이를 맞췄어요. 화가가 정원에 도랑을 파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은 단 하나, 빛이 잎사귀와 드레스 위를 흐르는 그 순간의 각도였어요.
모델은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된 카미유 동시외였어요. 그녀는 흰 드레스 자락을 끌며 네 가지 포즈로 화면 곳곳에 서 있어요. 같은 사람이 한 화면 안에 여럿으로 등장하는 이 기묘한 풍경은, 모네가 빛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 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이 공들인 작품은 1867년 파리 살롱에서 낙선했어요. 심사위원들은 '서사가 없다'며 거절했고, 어느 심사관은 '이 방향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이제 그들을 구해야 할 때'라고 비웃었어요. 지금 우리가 인상주의의 정수라 부르는 두꺼운 붓질이 당시엔 예술을 망치는 것으로 보였던 거예요.
낙선 뒤 모네는 돈이 바닥났어요. 동료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가 이 그림을 사들여 모네를 도운 덕분에 그가 계속 붓을 쥘 수 있었어요. 훗날 오르세 미술관은 이 그림의 흰 드레스들이 '구도 전체를 단단히 붙잡아 준다'고 썼어요. 살롱이 틀렸고, 바지유가 옳았어요.
그림 속 드레스의 흰색, 그늘 속의 파란 기운, 햇볕이 스치는 자락의 황금빛 — 이것들이 인상주의가 세상에 가져온 새 눈이었어요. 도랑을 파서 찾아낸 그 빛의 각도는 결국 미술의 방향을 바꿨어요.
- 흰 드레스의 무리 — 짙은 초록 정원 속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 넷이 흩어져 있어요. 왼쪽 셋은 나무 그늘에 모여 앉거나 섰고, 오른쪽 하나는 길 위에서 나뭇가지로 손을 뻗죠. 환한 흰빛이 초록 배경을 또렷이 가르며 떠올라요.
- 닮은 얼굴들 — 네 여인의 이목구비가 묘하게 닮았어요. 사실 이들은 모두 한 사람, 모네의 연인 카미유가 자세를 바꿔 가며 차례로 선 모습이거든요.
- 빛의 얼룩 —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든 햇살이 흰 드레스 위에 어른어른 얼룩져요. 그늘에 든 자락은 푸르스름하게 식고, 햇빛 받은 자락은 환하게 부서지죠. 이 어른거림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이에요.
- 앉은 여인의 꽃 — 가운데 앉은 여인은 무릎 가득 꽃을 안고 양산을 받쳤어요. 그 옆 화단의 붉고 노란 꽃송이들이 짙은 초록 사이에서 점점이 타오르듯 빛나지요.
- 미끄러지는 발 — 오른쪽 여인의 치맛자락을 보세요. 발이 드러나지 않아 마치 땅 위를 스르르 미끄러지는 듯해요. 야외에서 거대한 캔버스를 다루며 생긴, 묘하게 어색한 한 자리죠.
가까이서 거칠던 붓 자국이, 한 걸음 물러나면 어떤 여름빛으로 살아나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도랑을 판 청년 화가
스물여섯의 모네는 아직 무명에 가까운 청년이었어요. 1866년, 그는 빌려 살던 집의 정원에서 햇살 가득한 여름 한낮을 캔버스에 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작정한 그림이 보통 크기가 아니었어요. 사람을 거의 실물 크기로 담을 만큼 거대한 화면이었거든요. 키보다 높은 윗부분까지 야외에서 직접 칠하려니, 사다리에 올라서면 시점이 흐트러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모네는 기발한 꾀를 냈답니다. 정원에 도랑을 파고, 캔버스를 그 안에 내렸다 올렸다 하며 늘 같은 눈높이를 지킨 거예요. 한 폭의 그림을 위해 땅까지 파낸 셈이지요. 이 고집스러운 수고에는 한 가지 신념이 담겨 있었어요. 빛과 공기가 만들어 내는 그 순간의 인상은, 화실 안의 기억이 아니라 야외의 현장에서만 붙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답니다.
한 사람이 네 사람으로
화면 속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 넷이 등장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모델은 단 한 사람, 모네의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된 카미유 동시외였어요. 그녀가 자세와 표정을 바꿔 가며 차례로 포즈를 취했지요. 한 사람이 네 사람이 된 거예요. 인물들이 걸친 유행하는 의상은 모네가 잡지의 패션 삽화를 참고해 그려 넣었다고 해요. 야외에서 빛을 잡되, 세부의 마무리는 실내에서 손본 거랍니다. 사실 모네의 진짜 관심은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옷자락과 살결 위로 떨어지는 빛과 그늘이었어요. 나무 그늘 아래 흰 천이 어떻게 푸르스름하게 식고, 햇빛 받은 자락이 어떻게 환하게 부서지는지를 보세요. 그 어른거리는 얼룩이야말로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이지요.
살롱의 문전박대
야심만만했던 이 대작은 1867년 살롱전에서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말았어요. 주제가 빈약하고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지요. 심사위원들은 모네의 거칠고 두툼한 붓질에도 눈살을 찌푸렸어요. 한 심사위원은 '젊은이들이 이 끔찍한 방향만 좇으려 한다, 이제는 그들을 보호하고 예술을 구해야 할 때'라며 호되게 나무랐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바로 그 '끔찍한' 붓질이야말로, 머지않아 인상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빛나는 특징이 됩니다. 시대가 등을 돌렸던 바로 그 지점에 미래가 있었던 셈이지요. 한 푼도 없던 모네를 돕기 위해, 동료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가 이 그림을 사 주었다는 따뜻한 일화도 함께 전해진답니다. 훗날 사람들은 오른쪽 여인이 마치 치마 밑에 바퀴를 단 듯 어색하게 미끄러진다고 흠을 잡기도 했지만, 빛과 그림자를 다룬 솜씨만큼은 한결같이 칭송받았어요. 모네는 이 한 점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네 여인의 얼굴을 천천히 비교해 보세요. 묘하게 닮은 이목구비에서, 한 사람이 여러 번 포즈를 취했다는 비밀이 어렴풋이 느껴질 거예요. 다음으로는 인물보다 그 위에 떨어진 빛에 눈을 두세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든 햇살이 흰 드레스 위에 노랑과 보랏빛 얼룩을 흩뿌린 자리를 찾아보시면 좋아요. 왼쪽 여인이 든 꽃다발과 햇빛 받은 화단의 환한 색감도 놓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한 걸음 물러나 화면 전체를 보면, 가까이서 거칠어 보이던 붓 자국들이 한순간 반짝이는 여름빛으로 살아나는 것을 느끼실 수 있답니다.

조롱으로 던진 '인상'이라는 말이 한 시대의 이름이 됐어요.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