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첸시오 10세
Portrait of Innocent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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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Innocent X is a c. 1650 oil on canvas painting by Spanish artist Diego Velázquez, depicting Pope Innocent X, head of the Catholic Church from 1644 to 1655. Many artists and art critics consider it the finest portrait ever created. It is housed in the Galleria Doria Pamphilj in Rome. A smaller version is held b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 New York City, and a study is on display at Apsley House in London.
1650년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 앞에 앉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이 화가를 믿지 않았어요. 낯선 나라에서 온 궁정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맡기기 전, 교황은 실력 증명을 요구했고,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하인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화를 먼저 그려 보였습니다.
완성된 교황의 초상을 처음 본 순간, 인노첸시오 10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에 트로포 베로! 에 트로포 베로!(너무 진짜다! 너무 진짜다!)' 전문가들은 이 일화의 진위를 의심하지만, 그 말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화면 속 교황은 날카롭고 노회한 눈빛에, 선홍빛 예복과 드리워진 붉은 휘장 사이에서 마치 지금 이쪽을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황은 이 초상을 가족들에게만 보여 주었고, 작품은 17~18세기 내내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걸작 중의 걸작'이라 속삭인 소수의 감식가들만이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갤러리에서 조용히 그것을 감상했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림은 오래 잠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20세기에 아일랜드계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 초상을 발견하고 평생 45점 이상의 변형작을 그렸습니다. 베이컨의 교황들은 입을 벌리고 절규합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원작을 직접 보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벨라스케스가 담아낸 그 '너무 진짜 같은' 얼굴이 베이컨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채, 전혀 다른 공포로 변주되었던 겁니다.
그림은 지금도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갤러리에 있습니다. 한 인간의 권력과 의심, 그리고 화가의 서늘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채로요.
- 쏘아보는 눈 — 교황이 고개를 살짝 돌린 채 곁눈으로 우리를 쏘아봐요. 의심과 경계, 빈틈없는 권력자의 냉철함이 그 눈빛 하나에 응축되어 있지요.
- 붉음의 바다 — 모자와 망토, 옥좌, 뒤편 휘장까지 온통 농도를 달리하는 붉은색이에요. 그 핏빛 한가운데서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요.
- 흰 무릎 — 붉은 망토 아래 흰 제의가 무릎 위로 풍성하게 부풀고 레이스 자락이 흘러내려, 강렬한 붉음을 잠시 식혀 줘요.
- 쥔 종이 — 오른손에 작게 접힌 종이를 쥐고 있어요. 거기엔 화가의 서명이 담겨 있다고 전하지요.
- 늙어 가는 살결 — 상기된 뺨과 거친 수염, 처진 눈두덩의 질감을 가까이 보세요. 미화 없이 옮긴 '살과 피의 소용돌이' 같은 얼굴이에요.
이 얼굴에서 권력의 위엄이 먼저 보이나요, 아니면 한 인간의 약점이 먼저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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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짜 같은 얼굴
붉은 옷을 입은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옥좌에 앉아, 날카롭고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쏘아봐요. 1650년 무렵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 초상은, 많은 화가와 비평가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초상화로 꼽는 작품이에요. 지금은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 걸려 있지요.
이 그림이 그토록 칭송받는 건 한 치의 미화도 없는 사실성 때문이에요. 벨라스케스는 영리하고 빈틈없으며 늙어 가는 한 인간을 가차 없이 그려 냈어요. 교황의 위쪽 옷과 모자, 그리고 뒤편 휘장에 감도는 깊고 풍부한 붉은색은 이 작품의 빼어남을 그대로 보여 주지요. 1923년 한 미술상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벨라스케스가 혈색 좋은 이탈리아인을 마주하고는, 창백한 고국 사람들에게 익숙하던 손을 망설임 없이 포도주 빛 붉은색에 적셔, 이 혈기왕성한 인물을 무서울 만큼 생생하게 살려 냈다고요. 그러면서 그 얼굴을 '살과 피와 생명의 소용돌이'라 불렀답니다.
의심 많은 교황을 설득하기까지
이 초상은 벨라스케스가 두 번째로 이탈리아를 찾았던 1649년에서 1651년 사이에 그려졌어요. 교황이 입은 가벼운 아마포 옷으로 미루어, 아마 1650년 여름쯤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조반니 바티스타 팜필리라는 본명을 가진 이 교황은 처음에 벨라스케스 앞에 앉기를 꺼렸다고 해요.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이래요.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벨라스케스가 교황을 알현해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제안하자, 교황은 그 명성을 믿지 못하고 솜씨를 증명해 보이라 했지요. 그래서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하인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을 먼저 그렸고, 그 그림을 본 교황이 비로소 자리에 앉기로 했다는 거예요. 한편 전문가들은 이보다, 그가 이미 교황의 이발사를 비롯해 교황청 측근들을 성공적으로 그린 적이 있어 신뢰를 얻었으리라 보기도 한답니다. 완성된 그림을 본 교황이 '너무 진짜 같다, 너무 진짜 같아!'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유명하지만, 그 진위는 분명치 않아요. 다만 교황이 그 비범한 솜씨만큼은 부정하지 못했다고 전해지지요.
비명을 지르는 교황
이 초상은 오랫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교황의 가문인 팜필리 집안이 사적으로만 보관했기에, 17세기와 18세기 내내 몇몇 안목 있는 이들에게만 최고의 초상화로 여겨졌지요. 프랑스 역사가 이폴리트 텐은 이 그림을 '모든 초상화 가운데 으뜸가는 걸작'이라 부르며, 한번 본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어요.
이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건 20세기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에요. 그는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이 초상을 바탕으로 수십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 교황이 비명을 지르거나 일그러진 모습이었지요. 흥미롭게도 베이컨은 원작을 직접 보는 것을 한사코 피했다고 해요. 그럼에도 이 그림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남긴 단 하나의 작품이 되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교황의 눈으로 곧장 다가가 보세요. 의심과 냉철함, 그리고 권력자의 빈틈없는 경계심이 그 눈빛 하나에 응축되어 있어요. 한 미술상의 말처럼 '무언가를 캐묻는 듯한' 그 시선을 한참 마주해 보세요. 다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색에 주목하세요. 옷과 모자, 뒤편 휘장까지 농도를 달리하며 번지는 붉음이, 혈색 좋은 인물을 어떻게 살아 숨 쉬게 하는지 살펴보세요. 늙어 가는 얼굴의 살결, 곧 '살과 피의 소용돌이' 같은 그 질감도 가까이서 들여다보세요. 마지막으로 이 차분한 위엄의 얼굴 위에, 훗날 베이컨이 그린 비명 지르는 교황을 겹쳐 상상해 보세요. 같은 인물이 정반대의 두 얼굴로 미술사에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올 거예요.

거울 속 왕과 왕비, 그리고 붓을 든 화가 — 누가 누구를 그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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