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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5월 2일

The Second of May 1808

프란시스코 데 고야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Second of May 1808, also known as The Charge of the Mamelukes, is a painting by the Spanish painter Francisco Goya. It is a companion to the painting The Third of May 1808 and is set in the Calle de Alcalá near Puerta del Sol, Madrid, during the Dos de Mayo Uprising. It depicts one of the many people's rebellions against the French occupation of Spain that sparked the Peninsular War.

도슨트 이야기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시민들은 나폴레옹 군대의 이집트 맘루크 기병이 말을 몰아 군중 속으로 돌격해 오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프랑스가 포르투갈 원정을 빌미로 스페인 왕위를 빼앗고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를 국왕으로 앉히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군중은 흩어지기는커녕 기병들에게 달려들었어요. 칼이나 총 같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손에 잡히는 가장 거친 연장만으로 정예 직업 군인을 맞선 것이지요. 고야는 이 혼돈의 순간에 중심도, 단일한 시점도 두지 않았습니다. 화면 곳곳에서 서로 뒤엉킨 인간과 말이 뒤섞여, 전쟁이 아니라 소용돌이 자체처럼 보여요.

고야가 직접 이 현장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해요. 두 점의 그림은 1814년,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에야 완성됐습니다. 의뢰를 받은 고야는 역사의 영웅을 귀족이나 장군이 아닌, 이름 없는 시민들로 택했어요. 그 선택이 그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페르디난드 7세는 두 작품을 오랫동안 공개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다음 날의 처형 장면을 담은 '1808년 5월 3일'과 한 쌍을 이뤄요. 봉기와 보복, 이 두 장면이 나란히 걸릴 때 비로소 고야가 기록하려 했던 것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보세요
  • 흩어지는 눈어디 한 곳에 시선이 멈추질 않죠. 화가가 일부러 초점을 흩어 놓아, 그 어수선함 자체가 봉기의 아수라장을 느끼게 해요.
  • 쓰러지는 위세화면 한가운데 흰 말이 솟구치고, 그 위 터번을 두른 맘루크 기병이 뒤로 넘어가요. 점령군의 기세가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이죠.
  • 맨몸의 무기군중의 손을 보세요. 변변한 칼도 아닌 짧은 단검과 막대뿐이에요. 그 거친 도구로 잘 훈련된 기병에게 맨몸으로 달려들죠.
  • 바닥의 피화면 아래엔 이미 쓰러진 이들이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요. 흘러나온 붉은 피가 격렬한 싸움의 대가를 말없이 알려 주죠.

이 뒤엉킨 무리 속에서, 당신의 눈은 어느 얼굴에 가장 오래 머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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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를 목격한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사건이 일어나고 무려 6년이 지난 1814년의 일이에요. 1808년, 나폴레옹은 포르투갈로 가는 군대를 보강한다는 핑계로 스페인 왕좌를 빼앗고 자신의 형 조제프를 그 자리에 앉혔어요. 스페인 왕족을 마드리드에서 빼내려는 시도가 알려지자, 5월 2일 마드리드 시민들이 들고일어났지요. 이 봉기는 곧 프랑스 점령에 맞선 반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답니다.

고야는 마드리드에서 이 점령의 시대를 직접 두 눈으로 겪었어요. 다만 맘루크 기병이 군중을 향해 돌격하던 바로 그 순간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해요. 그는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에서 물러난 뒤, 페르난도 7세가 돌아오기 전까지 나라를 다스리던 임시 정부의 의뢰를 받아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1808년 5월 3일》을 단 두 달 만에 함께 완성했어요. 두 그림은 지금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나란히 걸려 있답니다.

중심 없는 화면의 아우성

이 그림에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영웅도, 또렷한 주인공도 없어요. 고야는 일부러 그렇게 그렸지요. 화면 어디에도 시선이 머물 단 하나의 초점을 두지 않음으로써, 그는 봉기의 그 아수라장 같은 혼란을 고스란히 전하려 했거든요. 칼을 휘두르며 돌격하는 이집트인 맘루크 기병들과, 흩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말을 향해 달려드는 성난 군중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요.

군중은 이 맘루크 병사들을 옛 무어인, 곧 오랜 적으로 여겼어요. 그래서 분노는 한층 더 거세게 타올랐지요. 고야는 칼과 단검 같은 가장 거칠고 보잘것없는 무기를 든 이름 없는 마드리드 시민들을, 잘 훈련된 점령군에 맨몸으로 맞서는 무명의 영웅으로 그렸어요. 말 위에서 떨어지는 기병, 피 흘리는 말, 비명과 흙먼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폭력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갑니다.

왕이 외면한 그림

그런데 정작 돌아온 페르난도 7세는 이 그림을 반기지 않았어요. 평범한 시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런 그림이 왕에게는 달갑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두 작품은 완성되고도 한참 동안, 여러 정권이 바뀐 뒤에야 비로소 대중 앞에 공개될 수 있었답니다.

이 그림은 수난의 역사를 한 번 더 겪기도 했어요.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마드리드가 폭격당하자 공화국 정부는 프라도의 그림들을 피란시켰는데, 고야의 작품을 싣고 가던 트럭이 사고를 당해 《1808년 5월 2일》이 크게 찢기고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손상을 입었어요. 1941년에 한 차례, 그리고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다시 한번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요. 한편 케네스 클라크 같은 비평가는 이 작품이 루벤스의 전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기도 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을 어느 한 곳에 멈추려 하지 말고, 눈이 자꾸 미끄러지도록 내버려 두세요. 고야가 일부러 초점을 흩어 놓았기 때문에, 그 산만함 자체가 봉기의 혼돈을 느끼게 해 줄 거예요. 다음으로 화면 가운데 쓰러지는 맘루크 기병과 발버둥 치는 말에 주목해 보세요. 점령군의 위세가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이 거기 담겨 있지요. 그리고 군중의 손에 들린 무기를 살펴보세요. 칼다운 칼도 아닌, 단검과 막대 같은 거친 도구들뿐이에요. 마지막으로 시간이 되신다면 옆에 걸린 《1808년 5월 3일》까지 함께 보세요. 낮의 격렬한 싸움과 그 이튿날 새벽의 처형이 짝을 이루어, 봉기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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