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은 마하
The Clothed M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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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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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마하》(스페인어: La maja vestida)는 스페인의 낭만주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인 프란시스코 고야가 1800년에서 1807년 사이에 그린 유화이다. 이는 1795년에서 1800년 사이에 제작된 《옷 벗은 마하》의 옷을 입은 버전이다. 작품 속 여성의 정확한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작품 속 여성은 마리아 테레사 데 실바(13대 알바 공작부인) 또는 마누엘 데 고도이의 정부인 페피타 투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고야의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이 두 그림은 오랫동안 정체를 감춰 왔어요. 같은 포즈, 같은 소파, 다른 옷 — 쌍둥이처럼 닮은 두 그림이 언제, 누구의 주문으로, 누구를 모델로 그려졌는지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1808년이에요. 프랑스군이 재상 마누엘 데 고도이의 재산을 몰수할 때 작성한 목록에 '나체 집시'와 '옷 입은 집시'로 적혀 있었어요. 당시 프랑스 지배층은 이 그림들을 '외설적'이라 분류했어요.
모델이 누구인지를 두고 두 가지 설이 팽팽해요. 하나는 고도이의 정부 페피타 투두라는 설, 다른 하나는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카예타나라는 설이에요. 고야와 공작부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정황도 있어요. 1797년 초상화에서 그녀는 '고야'와 '알바'라는 글자가 새겨진 두 반지를 끼고, 발밑의 '오직 고야만'이라는 문구를 가리키고 있거든요.
두 그림은 고야 생전에 공개 전시된 적이 없어요.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1814년부터 1836년까지 압수했다가, 1901년부터 프라도 미술관이 나란히 걸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짝' 형태는 사실 꽤 최근의 일이에요.
왜 같은 포즈로 두 점을 그렸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예요. 두 그림이 나란히 놓였을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 — 같으면서도 다른 그 간극 — 이야말로 고야가 남긴 가장 오래된 질문일지 모르겠어요.
- 응시 — 비스듬히 기댄 채 고개를 받치고,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빤히 바라봐요. 부끄러워 시선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도도하게 마주 보지요.
- 흰 옷의 긴장 — 몸에 착 감기는 얇은 흰 드레스와 허리를 두른 분홍 띠가, 가렸는데도 오히려 몸의 곡선을 또렷이 드러내요.
- 금빛 장식 — 가슴과 소맷부리에 얹힌 금빛 자수와 검은 레이스가 흰 천 위에서 화려하게 반짝여요. 발끝의 금빛 신코도 살짝 보이지요.
- 팔의 곡선 —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려 베개에 기댄 자세가 어깨에서 손목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요. 짝이 되는 《옷 벗은 마하》와 자세가 똑같답니다.
- 비워 둔 배경 — 인물 뒤는 텅 빈 짙은 어둠뿐이에요. 초록 침상과 흰 옷, 그리고 그 응시 외엔 시선을 끄는 게 아무것도 없지요.
이 여인의 눈빛, 당신에겐 어떤 마음으로 읽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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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을 이루는 두 점의 마하
고야의 《옷 입은 마하》를 이야기하려면 그 짝을 먼저 떠올려야 해요. 똑같은 자세로 비스듬히 기대어 정면을 빤히 바라보는 여인을, 고야는 두 가지 버전으로 그렸거든요. 옷을 벗은 《옷 벗은 마하》가 1795년에서 1800년 사이에, 그리고 옷을 입은 이 《옷 입은 마하》가 1800년에서 1807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전해져요. 두 그림은 자세가 거의 똑같아서, 한 여인의 두 모습을 나란히 보는 듯한 묘한 긴장을 자아내지요.
그런데 이 두 그림이 과연 처음부터 한 쌍으로 기획되었는지조차 분명치 않아요. 고야가 살아 있는 동안 두 작품은 한 번도 공개 전시되지 않았거든요. 두 그림이 함께 처음 기록에 등장한 건 1808년의 한 재산 목록에서예요. 당시 스페인의 실권자였던 재상 마누엘 데 고도이의 재산이 페르난도 7세에게 몰수되면서 작성된 목록이었지요. 1901년에 이르러서야 두 작품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비로소 나란히 걸리게 되었답니다.
끝내 밝혀지지 않은 얼굴
이 그림을 둘러싼 가장 큰 수수께끼는, 이 여인이 누구냐는 거예요. 모델의 정체도, 그림을 의뢰한 사람의 정체도 끝내 확정되지 않았어요. 가장 널리 거론되는 후보는 둘이에요. 하나는 재상 고도이의 정부였던 페피타 투도, 다른 하나는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카예타나 데 실바지요. 두 그림이 고도이의 개인 소장품으로 의뢰되었다는 설을 따르면 모델은 페피타 투도가 되고, 고도이가 1802년 세상을 떠난 알바 공작부인의 상속인들에게서 두 그림을 사들였다는 설을 따르면 모델은 공작부인이 돼요. 모두 추정일 뿐,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답니다.
알바 공작부인 설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따라붙어요. 고야와 공작부인이 오랜 열정적 연애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고야가 남긴 편지에는 '이제야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는 구절이 있고, 1797년에 그린 그녀의 초상에서는 'Goya'와 'Alba'가 새겨진 두 반지를 낀 손이 발치의 'Solo Goya(오직 고야)'라는 숨은 글씨를 가리키고 있지요. 이런 단서들이 두 사람의 연애를 짐작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마하가 공작부인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해요. 얼굴은 끝내 베일에 싸인 채 우리를 마주 본답니다.
종교재판소가 압류한 그림
이 그림들이 걸어온 길도 예사롭지 않아요. 1808년 고도이의 재산이 몰수될 때, 프랑스가 스페인을 점령하던 시기였어요.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명을 받은 프레데릭 키예가 고도이의 소장품 목록을 작성하면서 두 마하를 기록했는데, 프랑스 지배층은 이 그림들을 '벌거벗은 집시·비너스'와 '옷 입은 집시·비너스'로 분류하며 '외설적'이라 평했지요.
그 뒤 두 그림은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컬렉션에 들어갔다가, 1814년에서 1836년 사이에는 스페인 종교재판소에 의해 '압류'당하는 운명을 겪어요. 특히 옷을 벗은 쪽이 문제였지요. 신화 속 비너스가 아니라 동시대의 평범한 여인을, 그것도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린 누드는 당시로선 충격적이었으니까요. 바로 그렇기에 옷을 입은 이 버전이 더 흥미로워져요. 옷을 걸쳤어도 자세와 시선은 그대로라, 보는 이로 하여금 짝이 되는 누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거든요. 옷이라는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보임과 가림의 긴장을 가지고 노는, 고야의 재치가 여기 숨어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여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 보세요. 그녀는 부끄러워하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빤히 바라봐요. 이 당당한 응시야말로 두 마하가 당대에 불러일으킨 파격의 핵심이랍니다. 다음으로 그녀가 걸친 옷의 질감을 살펴보세요. 몸에 착 감기는 얇은 천과 허리를 두른 띠가 오히려 몸의 곡선을 또렷이 드러내, 옷을 입었는데도 묘한 긴장이 감돌아요. 그리고 푹신한 쿠션에 기댄 자세와 베개에 받친 머리, 살짝 뒤로 젖힌 팔의 곡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세요. 짝이 되는 《옷 벗은 마하》와 자세가 똑같다는 걸 떠올리면 한층 흥미로워져요. 마지막으로, 이 여인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세요. 이름을 지운 채 두 세기 넘게 우리를 마주 보는 그 시선의 수수께끼가, 이 그림을 영원히 젊게 남겨 둔답니다.

종교재판소가 압수한 나체화 — 옷 입은 버전과 나란히 걸린 한 쌍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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