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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4세의 가족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프란시스코 데 고야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카를로스 4세의 가족》(La familia de Carlos IV)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1800년에 제작을 시작하여 1801년에 완성한 그림이다. 프라도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일가를 그리는 커다란 영예를 안고 그려져 근엄성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면서도 고야는 훈장에서부터 의상까지 세부를 빛에 용해시켜, 다만 그 빛나는 자체만이 총체적으로, 색과 빛의 마술을 그려 내는 듯한 아름다움을 낳았다.

도슨트 이야기

1800년,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수석 궁정화가가 되었어요. 그 직후 그는 역대 최고의 궁정 단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거대한 화면 가득 카를로스 4세 가족이 서 있어요. 화려한 의상, 번쩍이는 훈장과 보석, 왕가의 위엄을 연출하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요.

그런데 왼쪽 어두운 귀퉁이를 들여다보면, 이젤 앞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는 한 사람이 있어요. 고야 자신입니다. 그는 벨라스케스가 『라스 메니나스』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했어요. 선배 거장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신을 역사 속에 새겨 넣는 방식이었어요.

프랑스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이 그림을 보고 '복권에 당첨된 구멍가게 주인의 초상 같다'고 했어요. 왕을 풍자한 것이냐는 의문은 오래 이어졌어요. 비평가 로버트 휴스는 그것을 부인했어요. 공식 궁정화가가 왕을 조롱했다면 자리를 지킬 수 없었을 거라는 거예요. 오히려 그는 미래의 페르난도 7세를 제법 위엄 있게 그렸어요.

그러나 중앙에 당당히 선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모습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요. 어느 러시아 대사가 11년 전 그녀를 묘사한 말 — 반복된 출산과 병으로 피부가 누렇고 이가 빠졌다 — 이 생각날 만큼, 그림 속 왕비의 미소는 서툰 틀니와 축 늘어진 피부를 그대로 담고 있어요.

고야는 사실을 지웠지만, 지우지 않았어요. '보고 판단하라'고 어둠 속에서 가리키는 그의 손짓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한 줄로 선 가족열세 명이 어둑한 방 안에 옆으로 늘어서 우리를 마주 봐요. 무대 위에 정렬한 듯한 이 정면 구도가 묘하게 긴장된 공기를 만들죠.
  • 빛이 머문 곳화면 한가운데 왕비의 금·은빛 드레스와 사람들 가슴을 가로지른 파랑·빨강 훈장 띠가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여요. 고야는 빛을 그 세부에만 모았어요.
  • 붉은 점가운데 작은 소년만 새빨간 옷차림이라 시선이 먼저 거기로 떨어져요. 왕비가 그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고 있죠.
  • 어둠 속 화가화면 왼쪽 끝, 그림자에 잠긴 커다란 캔버스 뒤에 화가 자신이 희미하게 서 있어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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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스케스의 자리에 선 고야

고야가 이 거대한 가족 초상화를 그린 1800년은 그의 인생에서 특별한 해였어요. 막 왕실의 수석 궁정화가로 올라선 직후였거든요. 이건 스페인 화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고, 한 세기 전 바로 그 자리를 차지했던 인물이 다름 아닌 디에고 벨라스케스였답니다. 고야는 1800년에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 여름 그림을 완성했어요. 화면에는 카를로스 4세와 왕비 마리아 루이사를 비롯한 왕실 가족이 실물 크기로, 화려한 의상과 보석, 그리고 카를로스 3세 훈장의 띠를 두른 채 한 줄로 늘어서 있죠. 흥미롭게도 고야는 이 구도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루이미셸 반 루가 1743년에 그린 펠리페 5세 가족 초상에서 빌려 왔답니다.

어둠 속에 숨은 화가

《시녀들》을 떠올려 보세요. 벨라스케스가 자기 모습을 캔버스 곁에 슬며시 그려 넣었던 그 유명한 장면 말이에요. 고야 역시 똑같이 했어요. 화면 왼쪽, 어둠에 잠긴 배경 속에 커다란 캔버스를 마주하고 선 화가 자신이 희미하게 보인답니다. 우리가 보는 건 그 캔버스의 뒷면뿐이죠. 다만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궁전 실내의 따뜻하고 깊은 공기로 가득했다면, 고야의 화면에는 한 미술사가의 표현대로 '숨 막힐 듯한 임박함'이 감돌아요. 왕실 가족이 마치 무대 위에 정면으로 늘어선 듯하고, 무대 옆 그림자 속에서 화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시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죠. 또 하나, 벨라스케스가 하인과 시종을 함께 그린 것과 달리 고야는 오직 가족만을 그렸고, 어떤 서사도 덧붙이지 않았어요. 그저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한 사람들일 뿐이랍니다.

풍자인가, 경의인가

프랑스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이 그림을 두고 "복권에 막 당첨된 동네 식료품점 주인의 초상" 같다고 비꼬았어요. 그래서 고야가 왕실을 은근히 조롱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오래도록 따라다녔죠. 특히 마흔여덟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얼굴은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딘가 노쇠하고 둔해 보여, 풍자의 빌미가 되곤 했어요. 하지만 미술 비평가 로버트 휴스는 이를 단호히 반박했답니다. 풍자를 했다면 궁정 초상화가 자리를 지킬 수 없었을 거라고요. 오히려 그는 이 그림이 경의에 가까운, 거의 아첨에 이르는 작품이라고 보았어요. 화면 왼쪽 파란 옷을 입은 인물, 즉 훗날 가장 평판 나쁜 군주가 될 페르난도 7세조차 고야는 제법 위엄 있게 그려냈으니까요. 가족 사이의 친밀함도 곳곳에 배어 있어요. 왕비는 가장 어린 자녀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왼쪽 깊숙한 어둠 속을 들여다보세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선 고야 자신이 숨어 있어요. 이걸 찾아내는 순간 그림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예요. 다음으로 중앙에 선 왕비 마리아 루이사에게 시선을 두세요. 고야가 가장 공들여 바라본 인물이 바로 가족의 중심인 그녀랍니다. 그리고 왕비가 손을 잡은 막내(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와, 파란 옷을 입은 맏아들 페르난도 왕자를 차례로 짚어 보세요. 마지막으로는 인물들의 옷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훈장 띠, 보석의 반짝임에 눈을 멈춰 보세요. 빛 속에 녹아들 듯 반짝이는 그 세부가, 빛의 마술사 고야의 진짜 솜씨를 보여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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