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
The Last Day of Pompeii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폼페이 최후의 날(러시아어: Последний день Помпеи, 영어: The Last Day of Pompeii)은 카를 브률로프의 역사화로, 현재 러시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79년 베수비오산 분화을 주제로 1830년부터 1833년 사이에 창작되었으며, 당시 러시아의 주류였던 신고전주의와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낭만주의 사이에 위치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1833년, 로마의 한 화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말을 잃었어요. 카를 브률로프가 3년에 걸쳐 완성한 거대한 화면 속에서, 화산재와 빛 아래 폼페이 시민들이 공포와 체념 사이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월터 스콧 경은 그 앞에 한 시간을 서 있다가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서사시'라고 했고, 빈센초 카무치니는 '불꽃 속의 거상'이라 불렀어요.
브률로프는 이 그림을 위해 오래 준비했어요. 폼페이 유적지를 직접 방문하고 나폴리 박물관의 유물을 연구했으며, 소(小)플리니우스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목격담 편지를 읽었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도 실제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했고, 발밑의 포석과 연석도 현장 그대로예요.
밀라노에서는 관객들이 브률로프에게 꽃 화환을 씌우고 거리를 행진했고, 볼로냐에서는 화랑이 라파엘로의 그림을 벽에서 내려 개인실에 보관하며 브률로프가 모사할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줬습니다. 1834년 파리 살롱에서 금메달을 받았고, 같은 해 그림을 본 에드워드 불워 리턴은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집필했어요.
러시아에서의 반응은 더 뜨거웠어요. 푸시킨은 폼페이 파괴를 노래하는 시를 썼고, 고골은 '오랫동안 반쯤 혼수상태였던 회화의 빛나는 부활'이라 평했습니다. 한 나라의 예술이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그림이었어요.
- 타오르는 하늘 — 화면 중앙을 붉게 물들인 불길과 연기를 먼저 보세요. 그 위쪽으로 번개가 내리꽂히고, 어둠 속에서 받침대의 조각상들이 우수수 앞으로 무너져 내려요.
- 쓰러진 흰 몸 — 화면 한가운데 길바닥에 한 여인이 푸른 옷자락을 흩뜨린 채 쓰러져 있고, 그 곁에 발가벗은 아기가 매달려요. 가장 밝게 빛나는 이 흰 살결이 시선을 정중앙으로 끌어당기죠.
- 저마다의 공포 — 둘러보면 인물마다 자세가 달라요. 머리에 짐을 인 사람, 손으로 머리를 감싸 막는 여인, 노인을 업은 젊은이, 두 팔을 하늘로 뻗어 절규하는 이까지 — 같은 재난 속 제각각의 몸짓이 화면을 가득 메워요.
- 어둠 속 백마 — 오른쪽, 어둠을 향해 앞발을 치켜든 흰 말과 등에서 떨어지는 기수를 따라가 보세요. 화면 깊숙이 내달리는 그 움직임이 혼돈에 공간감을 더해요.
- 매끄러운 비극 — 절박한 순간인데도 인물들의 몸은 조각처럼 매끄럽고 균형 잡혀 있어요. 신고전의 완벽한 형태와 낭만의 격정이 한 화면에서 부딪치는 지점이죠.
이 아수라장 속에서 당신의 눈은 누구의 얼굴에 가장 먼저 머무셨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로마에서 키운 대작
카를 브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은 1830년부터 1833년까지 여러 해에 걸쳐 완성된 거대한 역사화예요. 화가는 1823년 형 알렉산드르와 함께 로마에 도착했는데, 형은 폼페이 목욕탕 연구와 복원에 참여한 학자였지요. 카를 자신도 폼페이 유적을 직접 찾아, 무덤의 거리(비아 데이 세폴크리)가 남긴 폐허에 깊이 감명받아 바로 그 거리를 그림의 무대로 삼았답니다. 그는 플리니우스가 삼촌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타키투스에게 보낸 편지까지 읽으며 고증을 쌓았어요. 작품은 나폴리에서 만난 아나톨리 데미도프 백작이 주문했는데, 완성이 늦어지자 백작이 주문을 취소하겠다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오래 공을 들인 그림이랍니다.
신고전과 낭만 사이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특별한 건, 당시 러시아의 주류였던 신고전주의와 프랑스에서 떠오르던 낭만주의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 있기 때문이에요. 브률로프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본보기 삼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어요. 르네상스 거장들의 고전적 형태를 빌려 오되, 거기에 극적인 색채와 키아로스쿠로, 격렬한 감정 같은 낭만주의 요소를 더한 것이지요. 고골은 '그의 색채는 어느 때보다 밝다. 물감이 타오르며 눈을 때린다'고 감탄했어요. 라파엘로의 《보르고의 화재》와 푸생의 《아슈도드의 역병》도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지지요. 다만 비평가들은 고전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몸들이 그들이 처한 절박한 비극과 어딘가 어긋난다는 점을 함께 지적하기도 했답니다. 그 미묘한 어긋남은 당시 러시아 미술 교육이 최신 프랑스 화풍과 멀리 떨어져 있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해요.
러시아 미술의 자존심
완성된 그림은 로마의 작업실에서 처음 공개되자마자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어요. 월터 스콧 경은 한 시간이나 그림을 들여다본 뒤 '평범한 그림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시'라 했고, 밀라노에서는 브률로프가 꽃 화관을 쓴 채 거리를 행진하는 환대를 받았지요. 이 작품은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에 영감을 주기도 했어요. 1834년 그림이 러시아에 도착하자 반응은 더욱 뜨거웠어요. 푸시킨은 폼페이의 멸망을 노래하는 시를 썼고,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을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영광'이라 불렀지요. 무엇보다 이 그림은 러시아 화가가 처음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사건이자, 러시아 미술이 유럽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음을 증명한 자부심으로 받아들여졌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위쪽의 번개와, 받침대에서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조각상들을 보세요. 인간이 세운 것들을 단숨에 부수는 자연의 숭고한 힘, 곧 낭만주의의 핵심 주제가 거기 담겨 있어요. 다음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어둠 속으로 내달리는 말과, 주인을 떨어뜨리는 그 격렬한 움직임을 따라가 보세요. 그 깊은 공간감이 재난의 혼돈을 한층 실감 나게 만든답니다. 그리고 노인을 구하려는 병사와 소년을 찾아보세요. 트로이를 탈출하며 아버지를 업은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요. 끝으로 머리에 화구를 인 채 달아나는 한 인물을 보세요. 바로 화가 자신을 폼페이의 화가로 그려 넣은 모습이랍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1830년 7월 혁명, 가슴 드러낸 자유가 보수의 시대엔 다락에 숨겨졌다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