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Death of Sardanapa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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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Sardanapalus is an 1827 oil painting on canvas by the French artist Eugène Delacroix, now in the Musée du Louvre, Paris. A smaller replica he made in 1844 is in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It is a work of Romanticism based on the tale of Sardanapalus, a king of Assyria, from Greek historian Diodorus Siculus's library. It uses rich, vivid and warm colours and broad brushstrokes, was inspired by Lord Byron's play Sardanapalus (1821) and inspired a Hector Berlioz cantata, Sardanapale (1830), and an unfinished Franz Liszt opera, Sardanapalo (1845–1852).
거대한 붉은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어요. 흰 천을 두르고 목에는 황금을 걸친 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발 아래 펼쳐지는 살육을 바라봐요. 사르다나팔루스, 아시리아의 왕입니다. 패망이 임박하자 그는 자신의 모든 것 — 여인들, 말, 보물 — 을 자신보다 먼저 소멸시키라 명했어요.
들라크루아는 1827년 파리 살롱에 이 그림을 내걸었어요. 반응은 즉각적이었어요. 한 비평가는 이것을 '추함의 광신'이라 불렀고, 살롱은 혼란에 빠졌어요. 신고전주의가 요구하는 절제된 색채와 도덕적 주제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대신 화면 전체가 붉고 뜨겁고 거칠었어요.
그림은 로드 바이런의 희곡 『사르다나팔루스』(1821)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들라크루아는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죽음의 장면이 관람자 쪽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느낌을 만들었어요. 차분한 질서 대신 혼돈과 운동감, 그것이 낭만주의가 살롱에 던진 도전이었습니다.
침대 발치에는 황금 코끼리 두상이 있고, 주변에는 값비싼 장신구들이 살육 사이에 흩어져 있어요. 오직 한 여인만이 구경하는 우리 쪽을 바라봐요. 나머지 모두는 맡은 임무 — 죽음 — 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베를리오즈는 이 그림에 감응해 칸타타를 썼고, 리스트는 오페라를 구상했어요. 이 한 장의 그림이 음악과 문학까지 끌어들인 셈이에요. 과잉이야말로 들라크루아가 세상에 건넨 언어였습니다.
- 붉은 침상 — 화면 가운데 짙은 붉은 천으로 덮인 거대한 침상이 비스듬히 솟아 있어요. 그 위에 흰 옷을 걸치고 비스듬히 기댄 왕이, 주위의 학살을 마치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내려다봅니다.
- 대각선의 소용돌이 — 왼쪽 앞에서는 화려하게 치장한 흰 말을 제압하려는 인물이, 침상 가까이에서는 칼에 쓰러지는 여인들이 보여요. 모든 동작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휘몰아치는 대각선을 그립니다.
- 색의 충돌 — 어두운 배경 위로 침상의 붉은빛이 솟구치고, 죽어 가는 여인들의 크림빛 살결과 곳곳에 번뜩이는 황금 장신구가 눈을 화면 이리저리로 빠르게 끌고 다녀요.
- 우리를 보는 눈 — 이 아수라장 속에서 화면 아래쪽,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는 단 한 명의 여인을 찾아보세요. 그 시선이 당신을 슬며시 이 비극의 무대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 혼돈 속에서, 왕은 어째서 저토록 고요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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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에 담긴 멸망의 광기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적에게 패하자,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라 명령했다는 전설을 들어 보셨나요? 외젠 들라크루아는 1827년, 이 파멸의 순간을 거대한 캔버스에 펼쳐 놓았어요. 지금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은 영국 시인 바이런의 희곡 《사르다나팔루스》(1821)에서 영감을 받았답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짙은 붉은 천으로 덮인 거대한 침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흰 옷을 걸치고 금장식을 두른 왕이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어요. 놀라운 건 그의 표정이에요. 주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을 마치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죠. 자신의 여인들과 말, 보물까지 모두 함께 데려가려는 이 왕의 차가운 시선이, 보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답니다.
색채로 그린 혼돈
들라크루아가 이 장면을 표현한 방식은 그야말로 격정 그 자체예요. 그는 또렷한 윤곽선 대신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붓 터치로 화면 전체에 강렬한 운동감을 불어넣었어요. 칼에 찔려 쓰러지는 여인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남자, 왼쪽 앞에서는 화려하게 치장한 말을 죽이려는 인물까지,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해 소용돌이치고 있죠. 어두운 배경 위로 침상의 붉은빛이 강렬하게 솟구치고, 왕의 새하얀 옷자락과 죽어 가는 여인들의 크림빛 살결, 그리고 곳곳에서 번뜩이는 황금 장신구들이 우리 눈을 화면 이리저리로 빠르게 끌고 다녀요. 비대칭으로 가득한 구도이지만, 신기하게도 전체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는답니다. 이 모든 아수라장 속에서 단 한 사람, 코끼리 머리 장식 곁에 비스듬히 기댄 여인만이 우리 관람객과 눈을 맞춘다는 점도 놓치지 마세요.
살롱을 뒤흔든 추악함의 광신
1827년 파리 살롱에 이 그림이 걸렸을 때, 반응은 그야말로 둘로 쩍 갈렸어요. 당시 화단은 절제된 색채와 엄격한 공간, 그리고 도덕적인 주제를 중시하는 신고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거든요.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영웅 호라티우스 형제 같은 고전적 영웅과 달리, 사르다나팔루스는 사람과 보물을 모조리 파괴하는 과잉과 방탕의 화신이었어요. 한 비평가는 이 그림을 두고 "추악함의 광신"이라며 혹평했답니다. 들라크루아는 단축법으로 죽음의 장면을 관객의 공간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아카데미 회화의 질서정연함과는 정반대의 충격을 안겼어요. 훗날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은 이 작품이 동방을 향한 환상과 서구 남성의 욕망이 뒤섞인 파괴적 상상으로 읽혔다고 분석하기도 했어요. 한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이 그림과 바이런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오페라 《사르다나팔로》를 구상했답니다.
관람 포인트
가장 먼저 화면 중앙, 붉은 침상 위에 무심히 누운 왕에게 눈을 두세요. 그의 차분한 시선과 주위의 격렬한 혼돈이 이루는 대비가 이 그림의 핵심이에요. 그다음 붉은 천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의 발치에 엎드린 여인을, 또 왼쪽 앞에서 말을 제압하는 인물을 찾아보세요. 그 대각선의 흐름이 화면 전체를 휘감는답니다. 마지막으로 코끼리 머리 장식 곁에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단 한 명의 여인을 찾아보세요.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일하게 관객과 눈을 맞추는 그 시선이, 이 비극의 무대 안으로 당신을 슬며시 끌어들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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