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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그랜트 우드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아메리칸 고딕》은 1930년 그랜트 우드가 그린 시카고 미술관의 컬렉션 회화이다. 우드는 아이오와주 엘던에 있는 미국 고딕 양식의 집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런 집에 살만한 부류의 사람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였다. 그림 속 인물은 농부인 아버지와 딸이지만, 종종 부부로 오해한다. 건축 양식의 명칭을 그대로 그림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도슨트 이야기

1930년, 그랜트 우드는 아이오와주 엘던의 작은 마을에서 고딕 양식 창문이 달린 허름한 목조 가옥을 발견했어요. '이 집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그려 보자.' 그 생각 하나로 탄생한 그림이 '아메리칸 고딕'입니다.

두 모델은 화가의 여동생 낸과 집안 주치의인 치과 의사 바이런 맥키비 박사였어요. 그런데 그림이 신문에 실리자 사람들은 으레 두 사람을 부부로 여겼습니다. 낸은 평생 '나는 아버지 곁의 딸을 연기했는데 왜 아내 취급을 받느냐'고 해명했고, 우드 자신도 1941년에야 편지 한 통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어요. '그 점잖은 여인은 그의 다 자란 딸입니다.'

그림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뜨거웠어요. 시카고 미술관 공모전 심사위원 한 명은 '코믹한 만화 같다'고 혹평했고, 언론은 '인상 찌푸린 청교도적 바이블 벨트 주민 묘사'라며 아이오와 주민들을 격분시켰습니다. 정작 우드는 풍자가 아니라 헌사라고 주장했어요.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가 고향 농촌의 강인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 작품이라는 설명이었지요.

대공황이 깊어지면서 여론은 반전됐어요. 굳건히 서 있는 두 인물이 어려운 시대를 버텨 내는 미국 개척자 정신의 상징으로 읽히기 시작한 거예요. 풍자냐 헌사냐 — 그 논쟁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이 그림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수직의 쇠스랑남자가 세 갈래 쇠스랑을 가슴 앞에 꼿꼿이 세워 쥐었어요. 그 곧은 살들이 셔츠 주름, 멜빵으로 이어지며 화면 전체를 빳빳하게 당겨요.
  • 메아리치는 첨탑뒤편 흰 집의 뾰족한 고딕 창 모양이 앞쪽 쇠스랑의 형태와 똑 닮았어요. 제목의 '고딕'이 사람과 집에 동시에 새겨진 셈이죠.
  • 어긋난 시선남자는 안경 너머로 우리를 똑바로 노려보는데, 곁의 여인은 눈길을 슬쩍 옆으로 비껴요. 그 작은 어긋남이 묘한 긴장을 만들어요.
  • 흐트러진 머리칼단정히 빗어 넘긴 여인의 머리에서 한 가닥이 목덜미로 흘러내렸어요. 그 한 올이 굳은 표정에 의외의 부드러움을 슬며시 더해요.

이 두 사람, 시골 사람을 비웃는 그림일까요 아니면 그 완고함에 바치는 헌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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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의 두 사람

《아메리칸 고딕》은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가 1930년에 비버보드(나무 섬유판)에 그린 그림으로, 시카고 미술관에 있어요. 카펜터 고딕 양식의 흰 집 앞에, 쇠스랑을 든 중서부의 농부와 한 여인이 나란히 서 있지요. 우드는 1930년 아이오와의 엘던에서 이 작고 소박한 집 — 허름한 목조 건물에 뾰족한 고딕식 창이 달린 — 을 보고, "이런 집에 살 법한 사람들"을 함께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모델은 화가의 여동생 낸과, 집안의 치과의사였던 매키비 박사예요. 우드는 두 사람을 부부가 아니라 '아버지와 딸'로 의도했다고 훗날 밝혔지요. 세 갈래 쇠스랑의 수직선이 남자의 멜빵 바느질과 셔츠 주름, 집의 뾰족한 고딕 창으로 메아리치며, 화면 전체에 곧고 엄격한 분위기를 만들어요.

풍자인가, 헌사인가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 공모전에서 동메달과 300달러를 받고 미술관이 사들였어요. 그런데 신문에 실리자 정작 아이오와 사람들이 분노했지요. 자신들을 "찌푸리고 완고한, 성경만 두드리는 사람들"로 그렸다고 느꼈거든요. 우드는 이건 풍자가 아니라 오히려 애정의 표현이라며 항변했어요. "아이오와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나는 프랑스까지 가야 했다"고요. 또 이렇게도 말했지요. "이 그림에 화를 내는 건, 자기 자신이 그 모습을 닮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흥미롭게도 그림의 의미는 시대와 함께 바뀌었어요. 대공황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이 두 사람에게서 비웃음 대신 '굳건한 개척자의 정신'을 읽기 시작했지요. 우드 스스로도 동부 미술계에 맞서 중서부의 삶을 그린 '지역주의' 화가로 자리를 옮겨 갔고요.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

《아메리칸 고딕》은 아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일 거예요. 영화와 드라마, 광고, 만화에 이르기까지 — 두 사람이 정면을 보고 서서 한 명이 쇠스랑(혹은 다른 물건)을 든 그 구도는, 미국적인 무언가를 가리키는 일종의 부호가 되었지요. 정작 그림 속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데, 그 굳게 다문 침묵이 오히려 끝없는 이야기를 불러온 셈이에요. 모델이 된 아이오와의 그 집은 지금도 엘던에 그대로 서서, 사람들이 찾아와 똑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어요. 한편 어떤 학자는 이 그림을 '애도의 초상'으로 읽기도 해요 — 한낮인데도 닫힌 커튼, 여인이 앞치마 안에 입은 검은 옷, 살짝 비낀 시선을 두고요.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읜 우드의 기억이 어딘가 배어 있다는 거지요. 정작 우드 자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내 좋은 생각은 모두 소젖을 짜다가 떠올랐다"고요.

관람 포인트

두 사람의 표정과, 화면을 채운 수직선들을 함께 느껴 보세요 — 쇠스랑에서 시작해 셔츠 주름, 창문, 첨탑으로 이어지는 그 곧은 선들이 인물의 완고함과 포개지지요.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품고 보면 더 재미있어요. 이 그림은 시골 사람들을 비웃는 걸까요, 아니면 그 굳건함에 바치는 헌사일까요? 90여 년이 지나도 답이 갈린다는 것, 그게 이 그림의 힘이랍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 두 사람이, 보는 이마다 저마다 다른 미국을 비춘다는 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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