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낭자상
Unnangjasang
- 분류
- Paintings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운낭자상(雲娘子像)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지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1914년에 그린 초상화이다. 2012년 2월 16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86호로 지정되었다.
석지 채용신이 1914년에 그린 초상화예요. 채용신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아우르며 수많은 인물을 그린, 우리 초상화의 마지막 대가로 꼽히는 화가지요.
운낭자라 불린 여인을 그린 이 그림에서, 그는 전통 초상화의 기법에 서양화의 음영법을 슬며시 더했어요. 그래서 얼굴과 옷의 입체감이 한층 또렷하게 살아나지요. 옛것과 새것이 만나던 시대의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한 화가의 솜씨가 깃든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 품에 안은 아이 — 옥색 치마 위, 발가벗은 남자아이가 어머니 품에 폭 안겨 환히 웃고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엄마와 아기' 그림으로 꼽히는 바로 그 장면이랍니다.
- 드러난 한쪽 발 — 길게 흘러내린 치맛자락 아래로 갸름한 외씨버선을 신은 한쪽 발끝이 살짝 비져 나와 있어요. 정면을 향해 곧게 선 자세에 슬며시 생기를 더하지요.
- 단정한 머리 — 화려한 가체 없이 가르마를 타 매끈하게 빗어 넘긴 머리예요. 치장을 덜어 낸 그 단아함에서 오히려 기품이 배어나죠.
- 입체감 — 저고리 옷고름과 치마 주름에 옅은 음영이 드리워, 천이 접히고 늘어진 결이 도드라져요. 전통 담채에 서양식 음영법이 슬며시 더해진 흔적이랍니다.
- 글씨와 도장 — 오른쪽 위에 또박또박 적힌 화제(畵題)와 왼편의 붉은 인장을 찾아보세요. 백 년 전 화가가 의로운 여인에게 보낸 정성의 흔적이지요.
어머니의 차분한 얼굴과 아이의 활짝 핀 웃음, 두 표정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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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로운 여인의 초상
《운낭자상》은 석지 채용신이 1914년에 그린 초상화예요. 지금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2012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486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요. 그림의 주인공인 운낭자는 최연홍(1785~1846)이라는 여인이에요. 그는 본래 의로운 기생, 곧 의기로 전해 내려오는 인물이랍니다.
최연홍의 이야기는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난리 통에 가산군수 정시가 목숨을 잃자, 최연홍은 그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수습했다고 전해져요. 그 의로운 행실 덕분에 그는 세상을 떠난 뒤 평양의 의열사에 모셔져 제향을 받았지요. 채용신은 바로 그런 한 여인의 곧은 삶을,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정성스레 화폭에 되살려 낸 거예요.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
그림 속 운낭자는 살구색, 혹은 옅은 미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입고 있어요. 그리고 품에는 남자아이를 안고 서 있는 전신입상이지요. 자세히 보면 외씨처럼 갸름한 버선을 신은 한쪽 발이 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나 있어요. 머리는 무거운 가체를 얹지 않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양이랍니다. 화려한 치장 대신 단아하고 정갈한 멋이 배어나는 모습이에요.
이 작품이 특별히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지요. 격식을 갖춘 인물을 홀로 그리던 전통 초상화의 틀을 벗어나, 아이를 품에 안은 따뜻한 모성의 장면을 담아낸 거예요. 그래서 이 그림은 우리 근대기 회화가 어떻게 새로운 주제로 눈을 돌렸는지 보여 주는, 미술사적으로 뜻깊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답니다.
옛 기법과 새 기법이 만나던 시대
채용신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두루 살아간, 우리 초상화의 마지막 대가로 꼽히는 화가예요. 부드러운 담채와 간결한 필선으로 인물을 그려 내는 그의 솜씨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전통 초상화의 정신을 이으면서도, 그는 서양화의 음영법을 슬며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얼굴과 옷자락에 한층 또렷한 입체감이 살아난답니다. 옛것과 새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그 시대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셈이에요.
그림에는 화가가 남긴 글씨와 도장도 또렷이 남아 있어요. 오른쪽 위에는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世像)이라 적혀 있고, 왼쪽 가운데쯤에는 제작 시기를 알리는 글과 함께 '석지'(石芝), 그리고 '정산군수채용신신장'(定山郡守蔡龍臣信章)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지요. 화가의 손길이 어디서 끝났는지를 일러 주는 정직한 흔적이랍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운낭자가 품에 안은 아이에게 눈길을 두어 보세요. 우리나라 최초의 '엄마와 아기' 그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평범해 보이는 자세가 새삼 각별하게 다가올 거예요. 다음으로 치마 아래 살짝 드러난 외씨 버선 한쪽과, 가체를 얹지 않고 빗어 넘긴 단정한 머리 모양을 살펴보세요.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기품이 느껴지는 자태랍니다. 얼굴과 옷주름의 입체감도 눈여겨보세요. 전통의 담채와 필선에 서양식 음영이 더해진 결과예요. 마지막으로 그림 곳곳에 적힌 글씨와 도장을 찾아보세요. 백 년 전 한 화가가 의로운 여인을 향해 보낸 정성과 존경이, 그 작은 자취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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