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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배

The Barque of Dante

외젠 들라크루아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단테의 배》(프랑스어: La Braque de Dante) 또는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프랑스어: Dante et Virgile aux enfers)는 1822년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으로, 서사화의 사조가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슨트 이야기

1822년 봄, 스물네 살의 들라크루아는 살롱 개막에 맞춰 2개월 반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완성된 작품은 그를 탈진시켰고, 그림은 파리 화단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단테의 '신곡' 8번째 곡에서 빌려온 장면이에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뱃사공 플레기아스가 모는 배를 타고 지옥의 강 스틱스를 건넙니다. 불타는 도시 디스가 연기 속에 솟아 있고, 강물엔 저주받은 영혼들이 매달려 발버둥 칩니다. 단테는 두려움에 몸을 잃고, 베르길리우스는 그 옆에서 조용히 그를 붙듭니다.

구도는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던 신고전주의의 틀을 따랐어요. 하지만 색채는 달랐습니다. 단테의 붉은 두건은 배경의 화염과 공명하고, 물에 잠긴 영혼들의 살갗엔 흰색·노랑·초록·빨강 네 가지 물감이 따로따로 얹혀 물방울을 이루었어요. 들라크루아는 루벤스의 그림에서 이 기법을 착안했다고 했는데, 이 물방울이 그가 색채 화가로 출발하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살롱 심사위원 한 명은 '엉터리 작품'이라 했고, 다른 한 명은 '절제된 루벤스'라 불렀어요. 프랑스 정부는 그해 여름 이 그림을 2000프랑에 사들였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기뻐하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덜 감동적일까 봐 걱정했다고 해요. 낭만주의의 서막은 그렇게, 젊은 화가의 탈진 속에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나란한 두 시인화면 중앙, 붉은 두건을 쓴 단테가 두려움에 몸이 기우뚱하고, 월계관을 쓴 베르길리우스가 그를 든든히 붙잡아요. 두 자세의 대비에 이 그림의 심리극이 응축돼 있죠.
  • 불타는 도시왼쪽 멀리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지옥의 도시가 보여요. 납빛 연기와 그 불길이 화면 전체에 숨 막히는 공포를 깔아요.
  • 매달린 영혼들뱃전마다 저주받은 영혼들이 매달려 몸부림쳐요. 특히 배 저편에서 팔뚝을 뻗어 기어오르는 영혼의 머리는 들라크루아가 가장 아낀 부분이랍니다.
  • 물방울의 색영혼들의 젖은 몸을 가까이 들여다보세요. 흰색·노랑·초록·빨강이 섞이지 않은 채 또렷이 찍혀 물방울 하나를 이뤄요. 훗날 회화에 멀리 영향을 미친 발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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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문을 연 첫 대작

《단테의 배》는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첫 대작이에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지옥에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요.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차갑고 단정한 신고전주의에서 격정적인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서사화의 전환점을 알리는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장면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8곡에서 가져왔어요. 납빛의 자욱한 연기와 불타는 지옥의 도시 디스를 배경으로, 시인 단테가 두려움에 떨며 스튁스 강을 건너는 모습이지요. 영혼들이 들끓는 물살을 헤치는 배 위에서, 단테는 고대의 현명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의지해 몸을 가눠요.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한 발은 여전히 전통에 딛고 있다는 점이에요. 중앙에 똑바로 선 인물들의 배치, 수평면 위에 이성적으로 배열된 주변 인물들의 자세는 거의 40년간 프랑스 회화를 지배해 온 신고전주의의 규범을 따르고 있거든요. 들라크루아는 그 전통의 틀 안에서, 그러나 분명하게 그것을 깨뜨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 준 거예요.

색채로 그린 심리극

이 그림이 신고전주의의 냉정함을 벗어난 지점은 무엇보다 '감정'과 '색채'에 있어요. 뒤편의 연기와, 뱃사공 플레기아스를 감싼 옷자락이 사납게 펄럭이는 모습은 거센 바람을 느끼게 하고, 출렁이는 물살에 배는 오른쪽으로 들리며 비틀려 보는 이를 향해 기울어요. 화면 어디에도 위안이나 피난처는 없고, 분노와 광기와 절망만이 가득하지요.

들라크루아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파고들어요. 소란 속에서도 초연한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염려하는 모습은, 두려움과 불안에 몸의 균형마저 잃은 단테와 뚜렷이 대비돼요. 저주받은 영혼들은 미친 듯 헛된 일에 몰두하거나 완전한 무력감에 빠져 있고, 배 가장자리에 늘어선 그들의 몸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오르내리며 화면 아랫부분을 아슬아슬한 불안의 영역으로 만들지요. 중앙 인물들의 대담한 색채도 강렬해요. 단테의 붉은 두건은 등 뒤의 불타는 도시와 위태롭게 공명하고, 플레기아스를 감싼 부풀어 오른 푸른 천과 선명하게 대비된답니다. 비평가 샤를 블랑은 베르길리우스 망토의 흰 천을 두고 '어둠 한가운데서 깨어나는 거대한 자취, 폭풍 속의 섬광'이라 했어요.

물방울에 담긴 색채의 미래

이 그림에서 꼭 짚어야 할 디테일이 있어요. 바로 저주받은 영혼들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에요. 들라크루아는 물방울 하나와 그 그림자를 그리는 데에 섞지 않은 네 가지 순수한 색을 따로따로 썼어요.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에는 흰색, 물방울의 길이에는 노랑과 초록, 그림자에는 빨강을 쓴 거예요. 평범한 눈에는 단색이나 무색으로 보일 대상을 순수한 색의 성분들로 쪼개어 표현한 이 원리는, 훗날의 회화에 멀리까지 영향을 미친 중요한 발상이었어요.

들라크루아 자신도 이 작품에 큰 의미를 두었어요. 그는 배 저편에서 팔을 뻗어 올라오는 영혼의 머리를, 이 그림에서 가장 잘 그린 머리로 꼽았지요. 1822년 살롱을 위해 그는 두 달 반을 쉬지 않고 매달려 그림을 완성했고, 그 격렬한 노동 끝에 몸이 쇠약해질 정도였어요. 평은 엇갈렸어요. 심사위원 들레클뤼즈는 '진짜 졸작'이라 깎아내렸지만, 또 다른 심사위원 그로는 '절제된 루벤스'라며 높이 평가했지요. 그해 여름 프랑스 정부가 2,000프랑에 사들였고, 1874년 마침내 루브르로 옮겨졌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중앙, 나란히 선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비를 보세요. 붉은 두건을 쓴 채 두려움에 몸이 기우뚱한 단테와, 그를 든든히 붙잡으며 초연하게 앞을 응시하는 베르길리우스 — 두 사람의 자세와 표정에 이 그림의 심리극이 응축되어 있어요. 그다음 배 가장자리에 매달린 저주받은 영혼들을 따라가 보세요. 특히 배 저편에서 팔뚝을 뻗어 기어오르는 영혼의 머리는 화가 자신이 가장 아낀 부분이랍니다. 이어 그들의 젖은 몸에 맺힌 물방울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세요. 흰색, 노랑, 초록, 빨강이 섞이지 않은 채 또렷이 찍혀 하나의 물방울을 이루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화면 맨 왼쪽과 오른쪽 끝에 자리한 영혼들을 보세요. 마치 그로테스크한 책꽂이 양 끝처럼 장면을 가두며, 이 지옥에 숨 막히는 폐쇄감을 더해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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