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The Coronation of Napol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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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은 자크루이 다비드가 1805년부터 1807년까지 제작한 그림이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은 제정(帝政)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하여 네 개의 초대작(超大作)을 명했는데, 다비드는 《생 드 마르스에서의 군기 수여식》과 이 《대관식》을 완성시켰다. 의식은 1804년 12월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고, 로마에서 교황 비오 7세가 초청되었다. 황제는 월계관을 쓰고 앞으로 나와서 꿇어 앉은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바야흐로 왕관을 주고 있다. 가운데 깊숙이 들어간 높은 곳에는 황제의 모친이 그려져 있고, 한 단 낮게 장군과 고관들이 줄지어 있는데 좌우에 줄지은 수많은 인물도 정확한 초상으로서 그려져 있다.
1804년 12월,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서 가장 이상한 순간이 찾아왔어요. 교황 비오 7세가 멀리 파리까지 직접 왔건만, 나폴레옹은 그 손에서 왕관을 받는 대신 스스로 왕관을 집어 자신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다비드는 그 장면을 화폭에 옮기면서 교황이 두 손을 모아 축복하는 자세로 그렸어요. 황제에게 왕관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뒤에서 지켜보는 모습으로요. 나폴레옹이 최종 구도를 직접 감독했고, 교황의 손짓은 그 지시에 따라 조정되었다고 해요. 황제의 권위가 신이나 교황이 아닌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선언이었죠.
그런데 그림 안에는 실제로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이 앉아 있어요.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 라몰리노입니다. 그녀는 나폴레옹과 형제들 사이의 갈등에 항의해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완성된 그림 속 관람석 가장 중요한 자리, 심지어 교황보다도 눈에 띄는 위치에 그녀가 앉아 있습니다. 1808년 나폴레옹이 다비드의 작업실에서 완성된 캔버스를 처음 보았을 때, 감격하여 사의를 표했다고 전해져요.
그림의 크기도 압도적이에요. 가로 거의 10미터, 세로 6미터가 넘는 화폭에 수백 명의 인물이 담겨 있고, 그 중심에는 스스로 황제가 된 남자가 서 있습니다. 다비드 본인도 관람석 한켠에 자신을 그려 넣었어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이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 선언이에요.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를 설계한 그림입니다.
- 빛이 모이는 곳 — 어둑한 대성당 안에서 유일하게 환한 한가운데로 시선이 빨려 들어요. 왕관을 두 손으로 든 나폴레옹과 그 앞에 무릎 꿇은 흰옷의 조제핀이 빛의 한복판에 있죠.
- 건네지 않는 왕관 — 교황은 오른편 의자에 앉아 손짓만 보낼 뿐, 왕관은 나폴레옹의 손에 있어요. 권위가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선언을, 이 한 동작이 또렷이 말해 줘요.
- 금빛 행렬 — 나폴레옹 둘레로 붉은 망토와 금빛 자수의 성직자·시종들이 빽빽이 늘어서, 그 무리 전체가 두 주인공을 향한 거대한 액자처럼 보여요.
- 위층의 구경꾼 — 화면 가운데 위쪽 발코니에 한 무리가 난간에 기대 내려다보고 있어요. 다비드는 참석조차 않은 나폴레옹의 어머니를 저 좋은 자리에 그려 넣고, 화가 자신도 슬쩍 끼워 두었죠.
이 수많은 인물 가운데, 당신의 눈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닿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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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사의 한 장면
가로 거의 10미터, 세로 6미터가 넘는 이 압도적인 그림은, 1804년 12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담고 있어요. 나폴레옹이 1804년 구두로 주문했고, 다비드는 이듬해 12월부터 소르본 근처의 옛 예배당을 작업실 삼아 그리기 시작해 1808년 초에야 마무리했어요. 나폴레옹의 공식 화가였던 다비드가,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인물을 하나하나 초상으로 그려 넣은 역작이죠. 한때 혁명가 마라의 죽음을 성화처럼 그렸던 바로 그 다비드가, 이제는 황제의 대관을 기록하는 자리에 선 거예요. 혁명에서 제국으로 옮겨 간 한 시대가, 이 한 화가의 붓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에요.
스스로 씌우는 왕관
이 그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건, 다비드가 고른 '순간'이에요. 보통이라면 교황에게서 왕관을 받는 장면을 그렸겠지만,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무릎 꿇은 황후 조제핀에게 직접 왕관을 씌워 주는 순간을 택했어요. 사실 처음 밑그림에서는 나폴레옹이 제 손으로 자기 머리에 왕관을 얹는 모습이었는데, 지금도 화면에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죠. 교황 비오 7세는 화면 뒤편에서 그저 축복의 손짓만 보낼 뿐이에요.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위가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이 한 장면으로 또렷이 선언한 거예요. 무릎 꿇은 조제핀의 자세에도 당시의 시선이 배어 있고, 그녀의 비단옷에는 혁명으로 타격을 입은 리옹 견직물 산업을 지지하려는 뜻이 담겼다고도 해요.
사실과 연출 사이
이 그림은 역사의 기록이면서도, 곳곳에 영리한 연출이 숨어 있어요. 화면 한가운데 윗자리에서 대관식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좋은 예예요. 사실 그녀는 아들들 사이의 불화에 항의하느라 대관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는데, 다비드가 가장 좋은 자리에 그려 넣은 거예요. 다비드 자신도 위쪽 관람석에 슬쩍 등장하고요. 나폴레옹은 1808년 완성된 이 그림을 보고 깊이 감격해 화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고 해요. 훗날 다비드는 미국인의 의뢰로 똑같은 복제본을 기억에 의지해 그리기도 했는데, 브뤼셀 망명 시절까지 십여 년에 걸쳐 완성했죠. 지금 원작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데, 그림 앞에 서면 그 거대한 화면 속을 직접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2023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도 이 그림 속 대관식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을 만큼, 이 한 폭은 그 시대를 떠올리는 우리의 눈 자체가 되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한가운데, 왕관을 든 나폴레옹과 무릎 꿇은 조제핀에게 시선을 모아 보세요. 모든 인물의 시선과 구도가 이 두 사람을 향하도록 짜여 있어요. 그다음 뒤편에 앉은 교황 비오 7세를 찾아, 그가 얼마나 수동적으로 그려졌는지 확인해 보세요. 윗자리의 나폴레옹 어머니와, 관람석 어딘가의 화가 자신도 찾아보시고요. 마지막으로 수백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제각기 다른 표정과 화려한 의상을 천천히 훑어보면, 한 시대의 권력과 영광이 이 거대한 화폭 안에 그대로 응축돼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독배를 손에 쥐고도 여전히 가르치는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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