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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 여인들의 개입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자크루이 다비드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사비니 여인들의 개입(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프랑스어: Les Sabines 레 사비네[*])은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99년에 그린 그림으로, 로마 건국 세대에 의해 사비니 여인들이 납치된 후의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도슨트 이야기

1795년 여름, 자크루이 다비드는 루이 16세 지지자로 몰려 룩셈부르크 궁에 갇혀 있었어요. 혁명의 공포정치가 지나간 자리엔 피와 분열만 남아 있었고, 그 감옥에 면회를 온 사람이 있었어요 — 오래전 헤어진 아내 샤를로트였지요. 그 만남에서 다비드는 붓 대신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그가 선택한 것은 로마 건국 신화의 한 장면이었어요. 로마인들이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한 뒤, 복수를 다짐하며 쳐들어온 사비니 전사들과 로마 남편들이 맞붙으려는 순간 — 두 아이를 품에 안은 헤르실리아가 두 진영 사이로 몸을 던져요. 그녀는 로마의 왕 로물루스의 아내이자 사비니 왕 타티우스의 딸, 두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이었지요. 한 손은 남편을, 다른 손은 아버지를 향해 뻗으며 그녀는 멈춰달라고 호소해요.

다비드는 출소 후 4년에 걸쳐 이 그림을 완성했어요. 혁명 후의 프랑스가 얼마나 갈라져 있었는지를 알기에, 그는 이 신화적 장면에 화해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1799년 루브르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는 직접 관람료를 받았는데, 5만 명이 찾아왔고 6만 6천 프랑이 걷혔어요.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전쟁을 멈추는 것이 검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새삼 또렷해져요. 헤르실리아의 발밑에 놓인 아이들, 그리고 전사들의 흔들리는 시선 — 다비드가 감옥에서 발견한 화해의 문법은 결국 그것이었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보세요
  • 두 팔의 외침화면 한복판, 흰 옷의 여인이 두 팔을 활짝 벌려 양편의 창과 방패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요.
  • 발치의 아기들그 아래 맨바닥에 벌거벗은 아기들이 뒤엉켜 누워 있어, 무엇을 지키려는 싸움인지 단숨에 일러 줘요.
  • 맞선 두 전사왼쪽 붉은 망토의 사내와 오른쪽 투구 쓴 사내가 창과 방패를 든 채 마주 서, 여인을 사이에 두고 팽팽히 대치하지요.
  • 솟은 성벽뒤편으로 둥근 탑과 돌성벽이 우뚝하고, 그 아래로 수많은 창끝이 빽빽이 솟아 전장의 규모를 짐작케 해요.
  • 조각 같은 몸인물 하나하나가 매끈하고 또렷한 윤곽으로 다듬어져, 격렬한 싸움인데도 어딘가 멎은 듯 고요해요.

이 아수라장 한가운데서, 당신의 눈은 어느 얼굴에 먼저 머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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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잉태된 화해의 그림

자크루이 다비드가 1799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로마 건국 시절 사비니 여인들이 납치된 뒤 벌어진 한 전설적인 장면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감옥이었답니다. 다비드는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뤽상부르 궁에 갇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이 그림을 구상하기 시작했지요. 사이가 멀어졌던 아내 샤를로트가 옥으로 그를 찾아온 일이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 와요. 그는 아내를 기리는 마음으로, 다툼을 이기는 사랑과 아이들을 지키는 이야기를 그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완성까지는 무려 네 해 가까이 걸렸지요.

이 그림은 단순한 신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공포 정치의 유혈을 겪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서로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되자는 호소이기도 했거든요. 화면을 보면 로물루스의 아내 헤르실리아가 남편과 친정아버지 사이로 몸을 던지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어요. 그의 발치에는 아기들이 놓여 있지요. 한쪽에서 로물루스가 창을 들어 반쯤 물러선 적장 타티우스를 내리치려다, 그만 멈칫하는 순간이랍니다.

화면에 숨은 혁명의 그림자

다비드는 배경에도 의미를 촘촘히 심어 두었어요. 뒤편으로 솟은 바위 봉우리는 '타르페이아 바위'로, 로마에서 반역자를 던져 처형하던 곳이지요. 전설에 따르면 타르페이아라는 여인이 황금 팔찌를 탐내 성문을 열어 주었다가, 도리어 사비니인들에게 짓눌려 죽임을 당하고 그 바위에서 던져졌다고 해요. 그래서 이 바위는 내전과 배신을 떠올리게 한답니다. 또 배경에 우뚝 솟은 성벽은 바스티유 감옥을 넌지시 가리키는 것으로 읽혀요. 1789년 7월 14일 그 함락이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었으니, 화면 곳곳에 다비드가 살던 시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셈이에요.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어요. 헤르실리아를 비롯한 사비니 여인들의 모델은 파리 사교계의 귀부인들이었답니다. 특히 아델과 오로르 드 벨가르드 자매가 중심 인물의 모델이 되었다는 일화가 파리에 무성히 퍼졌지요. 오로르가 헤르실리아의 모델이 되고, 그 곁에 웅크린 여인은 아델을 본떠 그렸다고 해요. 신화 속 사비니 여인과 당대 파리 여인을 이렇게 잇댄 것은, 갈라져 싸우던 혁명 이후의 프랑스에 화해의 가족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뜻으로도 풀이된답니다.

입장료를 받은 화가

이 그림은 1799년 12월 21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가 일어난 지 몇 주 뒤 루브르에서 처음 공개되었어요. 이는 1790년대 말 파리 최대의 미술 사건으로 불릴 만했지요. 다비드는 여기서 아주 새로운 일을 벌였어요. 그때까지 역사화는 대개 주문을 받아 그리는 것이었는데, 그는 스스로 구상하고 그려서 이익을 위해 직접 선보였거든요. 전시에는 입장료를 받았고, 큰 거울을 설치해 관람객이 그림 속 반사된 제 모습을 함께 볼 수 있게 했답니다. 이 전시는 5만 명의 유료 관람객을 끌어모았어요.

다만 제일 통령 나폴레옹은 이런 시도를 못마땅해했어요. 그는 살롱에 전시된 작품만 공적 자금을 받을 수 있다며 국가의 매입을 거절했지요. 결국 이 그림은 1819년에야 루이 18세가 사들였답니다. 한편 화면 속 여인들이 걸친 하늘하늘한 가운은, 파리 상류 사회에 '고대풍 드레스'라는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한가운데로 시선을 두세요. 두 팔을 활짝 벌린 헤르실리아가 양편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고, 그 발치에 아기들이 놓여 있답니다. 복수가 아니라 화해를, 다툼이 아니라 아이들을 지키려는 마음을 그가 온몸으로 외치고 있어요. 다음으로 창을 든 로물루스의 손끝을 보세요. 막 적장을 내리치려다 멈칫하는 그 망설임의 순간이, 이 그림의 모든 긴장을 붙들고 있지요. 그러고는 배경의 바위 봉우리와 우뚝한 성벽을 찾아보세요. 타르페이아 바위는 배신과 내전을, 성벽은 바스티유를 떠올리게 하며 화면 너머의 역사를 일러 준답니다. 마지막으로 신고전주의 특유의 단정하고 또렷한 윤곽과, 조각상처럼 다듬어진 인물들의 자세를 음미해 보세요. 한복판의 격렬한 싸움마저, 다비드의 손끝에서는 이토록 질서 있고 고요하게 멎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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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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