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필 난맹첩
- 제작 시기
- 1830년대~1840년대
- 문화권
- Korean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김정희 필 난맹첩’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粧䌙師) 유명훈(劉命勳)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글씨 뿐 아니라 사군자(四君子)에도 능했던 김정희는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난맹첩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난의 형상을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구현했으며 김정희가 추구한 사란법(寫蘭法)에 입각해 개성적인 필묵법(筆墨法)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에 쓰인 제시(題詩) 역시 난(蘭)에 관한 고사(故事)와 난 그림에 능했던 중국의 인물들, 난의 속성 등에 관한 것으로, 문사철(文史哲)에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서예적 필법으로 난을 다양하게 잘 그렸던 김정희의 화풍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후대 화가들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화첩은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글씨 7점을 모은 서화첩이에요. 김정희가 자신의 작품을 늘 꾸며 주던 전담 장황사 유명훈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든 것이라, 살가운 마음이 담긴 첩이지요.
김정희는 글씨뿐 아니라 사군자에도 능해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이렇게 난초만 모아 엮은 사례는 이 '난맹첩'이 유일하답니다. 난의 모습을 저마다 다른 구도로 다채롭게 담아냈고, 그가 추구한 사란법에 따라 개성 있는 필묵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혀요.
화면에 쓴 시 역시 난에 얽힌 옛이야기와 난을 잘 그린 중국 인물들, 난의 성품에 관한 것이라, 글과 역사와 철학에 두루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문 세계를 함께 보여 줍니다.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회화사적으로 매우 가치 높은 작품이에요.
- 활처럼 휜 잎 — 오른쪽으로 길게 뻗다 끝에서 부드럽게 꺾여 내려오는 난 잎 한 줄기가, 텅 빈 면을 가로질러 화면 전체를 하나의 호로 묶어요.
- 뿌리의 무리 — 왼쪽 아래에는 짧은 잎들이 한 포기로 엉켜 솟고, 그 아래로 먹점들이 뿌려져 흙에 박힌 듯한 무게를 줍니다.
- 먹의 농담 — 같은 검정인데도 잎마다 진하고 옅음이 달라요. 한 붓에 먹을 머금은 양이 변하며 잎의 두께와 빛이 살아납니다.
- 글씨와 그림 — 왼쪽 위에 또박또박 적힌 글씨가 빈 오른쪽과 균형을 이뤄, 글과 그림이 한 화면에서 서로를 받쳐 줘요.
- 붉은 인장 — 네 귀퉁이에 찍힌 작은 붉은 도장이, 먹빛 일색의 화면에 점 같은 온기를 더합니다.
길게 뻗은 잎의 선을, 당신의 눈은 어디서부터 따라가게 되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접기 ↑
오직 난초만 모은 화첩
〈난맹첩〉은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열여섯 점과 글씨 일곱 점을 모은 서화첩이에요. 김정희가 자신의 글씨와 그림을 도맡아 표구하던 장황사 유명훈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든 것입니다. 글씨뿐 아니라 사군자에도 능했던 그가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이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화첩이 유일해요.
글씨로 친 난초
김정희는 난초를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그리되, 난을 칠 때 서예의 필법으로 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란법에 따라 개성적인 필묵을 구사했어요. 화면에 쓰인 시 또한 난에 얽힌 옛이야기와 난을 잘 그린 중국 인물들, 난의 속성에 관한 것으로,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두루 해박했던 그의 학문적 깊이를 보여 줍니다.
관람 포인트
서예의 필법으로 난을 친 김정희의 화풍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한 포기 한 포기 다르게 친 난초의 자태와, 그 곁에 적힌 글의 향기를 함께 음미해 보세요.

유배지의 메마른 붓끝에 담은, 변치 않는 마음.
이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