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The Valpinçon B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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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프랑스어: La Baigneuse Valpinçon)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1808년에 그린 그림으로, 1879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앵그르가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원래는 《앉은 여인》이라는 제목이었으나 19세기에 이 그림을 소유하고 있었던 발팽송(Valpinçon)의 이름을 따서 현재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1808년,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스물여덟 살의 앵그르는 등을 돌린 채 앉은 누드를 그렸어요. 처음에는 그저 '앉아 있는 여인'이라 불렸던 이 작품은 나중에 19세기 소장자의 이름을 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이 됩니다.
그림 속 여인은 화면 바깥을 향해 완전히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오직 등과 두 팔, 그리고 수건 위에 얹힌 발뿐입니다. 앵그르가 집중한 건 그 등의 면(面)이었어요. 비평가 로버트 로젠블럼은 훗날 이렇게 썼습니다. '시간과 움직임이 마법처럼 정지된 것 같다'고요.
처음 전시되었을 때 비평가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반세기 가까이 지나 앵그르의 명성이 확고해졌을 무렵, 공쿠르 형제는 '렘브란트조차 이 창백한 상반신의 호박색 빛을 부러워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루브르는 이 작품을 '조화로운 선과 섬세한 빛의 걸작'이라 평했어요.
앵그르는 이 등의 형태로 평생 돌아왔습니다. 1863년에 그린 '터키탕'에서 전경에 만돌린을 연주하는 인물이 바로 발팽송 목욕녀의 리듬과 색조를 다시 반향하고 있어요. 한 번 붙잡은 형태를 평생 다듬은 화가의 집요함이, 이 그림에서 처음 꽃핀 셈입니다.
- 흐르는 등 — 여인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어요. 목의 기울기에서 어깨로, 다시 허리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곡선의 흐름이 '조화로운 선의 걸작'이라 불리는 까닭이지요.
- 머리의 천 — 머리에 두른 붉은 줄무늬 천만이 차분한 살결 위에서 또렷한 무늬로 도드라져, 시선을 위쪽으로 끌어 올려요.
- 천들의 합창 — 왼쪽으로 흘러내린 초록 휘장과 침대를 덮은 흰 천의 주름이,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을 한층 도드라지게 받쳐 줘요.
- 차가운 곁 — 왼편 회색 벽과 서늘한 살결의 색조가, 따뜻해야 할 누드를 오히려 고요하고 정숙하게 가라앉혀요.
- 가려진 얼굴 —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표정이 가려진 덕분에 이 여인은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고요 속에 영원히 머물지요.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당신은 이 여인에 대해 무엇을 더 상상하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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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보인 여인
한 여인이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어요. 머리에는 천을 두르고, 부드럽게 흐르는 등의 곡선이 더없이 매끄럽고 고요하지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비롭게 다가와요. 이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1808년에 그린 작품이에요. 1879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지요.
이 그림은 앵그르가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그려졌어요. 본래 제목은 그저 「앉아 있는 여인」이었는데, 훗날 19세기의 한 소장자 이름을 따서 지금의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앵그르는 이미 1807년에 「목욕하는 여인」 같은 여성 누드를 그린 적이 있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그 주제를 다룬 그의 첫 위대한 성취로 널리 평가받아요.
고요한 관능
앞서 그린 작은 그림에서도 여인은 등을 보인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이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에는 그 노골적인 관능 대신, 차분하고 절제된 관능이 깃들어 있지요.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이 모델에게서 '깊은 관능'을 읽어 냈지만, 동시에 그는 본질적으로 정숙하게 그려져 있기도 해요. 이 모순이야말로 그림 곳곳에 스며 있는 매력이랍니다.
앵그르는 여러 장치로 이 긴장을 빚어냈어요. 목의 기울기와 등과 다리의 곡선은, 흘러내리는 금속빛 초록 휘장과 앞쪽에 부풀어 오른 흰 커튼, 그리고 침대보와 아마포의 주름에 의해 한층 도드라지지요. 그러나 이렇게 강조된 관능은, 서늘한 색조로 표현된 살결과 왼편의 우아한 검은 줄무늬 대리석 같은 차가운 요소들에 의해 다시 가라앉아요. 따뜻함과 차가움이 미묘하게 길항하는 셈이지요. 곤쿠르 형제는 훗날 '렘브란트조차 이 창백한 몸이 띤 호박빛을 부러워했으리라'고 찬탄했고, 루브르는 이 그림을 '조화로운 선과 섬세한 빛의 걸작'이라 일컬었답니다.
평생 되풀이된 모티프
흥미롭게도 처음 전시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이 그림을 그리 반기지 않았어요. 찬사가 쏟아진 것은 거의 오십 년이 지나, 앵그르의 명성이 확고히 자리 잡은 뒤였지요. 미술 평론가 로버트 로젠블럼은 이 작품의 궁극적인 효과를 '시간과 움직임, 심지어 중력의 법칙마저 마법처럼 멈춰 선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여인이 매끄러운 화면 위에 무게 없이 떠 있는 듯하다는 것이지요.
앵그르는 이 등을 보인 여인의 형상을 평생에 걸쳐 거듭 변주했어요. 그 정점이 1863년에 그린 「터키탕」이랍니다. 그 그림에서 앞쪽 한가운데에 앉아 만돌린을 연주하는 인물이, 바로 이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을 그 리듬과 분위기 그대로 되울리고 있지요. 한 젊은 화가가 로마에서 발견한 이 모티프가, 반세기 넘게 그의 예술을 따라다닌 셈이에요. 그 울림은 미술 바깥으로도 번져, 1924년 만 레이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앵그르의 바이올린」이라는 사진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여인의 등으로 시선을 천천히 흘려보내 보세요. 목의 기울기에서 어깨로, 다시 허리와 다리로 이어지는 그 매끄러운 곡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왜 이 그림이 '조화로운 선의 걸작'이라 불리는지 알게 될 거예요. 다음으로 여인을 둘러싼 천들을 살펴보세요. 금속빛 초록 휘장, 부풀어 오른 흰 커튼, 침대보의 주름이 어떻게 그 곡선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지 견주어 보는 거예요. 왼편의 검은 줄무늬 대리석과 서늘한 살결의 색조도 눈여겨보세요. 따뜻한 관능과 차가운 정숙함이 한 화면에서 부딪치고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얼굴을 의식해 보세요. 표정이 가려진 덕분에 이 여인이 어떻게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에 영원히 머물게 되는지, 그 신비를 가만히 느껴 보세요.

척추가 두세 개 더 있어야 가능한 등을 그려 혹평받은 앵그르의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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