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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November 16, 1581

일리야 레핀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러시아어: Иван Грозный и сын его Иван 16 ноября 1581 года)은 러시아 제국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유화 작품으로, 1883년에 제작에 착수하여 1885년에 완성되었다. 본 작품은 루스 차르국의 차르 이반 4세가 황태자인 그의 아들 이반을 살해한 후 후회와 충격에 휩싸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도슨트 이야기

1881년 3월, 레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에 쓰러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어요. 그로부터 몇 주 뒤엔 암살 가담자들의 공개 처형까지 지켜봤죠. 피와 폭력이 뒤섞인 그 해의 기억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어요.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곡 '복수'를 들으며, 그는 정확히 300년 전 일어난 또 다른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이반 뇌제가 격노한 나머지 홀로 아들의 머리를 내리친 1581년 11월의 일이었어요. 레핀은 그 순간 직후를 그렸어요. 폭력이 아니라, 폭력이 지나간 자리를요. 무릎 꿇고 아들을 끌어안은 아버지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아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손을 살며시 흔들어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렸다, 고통받았다, 지우고 또 덮고, 다시 공격했다'라고 레핀은 회고했어요.

놀라운 건 이 그림의 수난사예요. 1885년 완성되자마자 황실의 심기를 거슬러 전시 금지 처분을 받았고, 1913년엔 스물아홉 살의 남성이 칼로 캔버스를 세 번 그었어요. 소식을 들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큐레이터는 충격에 기차 앞으로 몸을 던졌다고 해요. 2018년에는 술 취한 관람객이 금속 막대로 보호 유리를 박살 내 그림의 중앙부, 황태자의 형상에 세 곳을 꿰뚫었어요.

그림은 그때마다 복원되어 돌아왔어요. 러시아 역사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제물로 삼는 비극은 반복됐고, 레핀은 그 패턴을 알았던 걸까요. 피로 물든 붉은 카펫 위에서 두 사람은 용서와 공포의 뒤엉킴 속에 지금도 서로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세요
  • 부릅뜬 눈노인이 된 아버지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져 있어요. 아들을 죽였다는 걸 막 깨달은 그 순간의 공포와 후회가 그 눈 하나에 다 담겼어요.
  • 감싼 손아버지의 한 손이 아들의 머리 상처를 황급히 틀어막고 있어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이미 늦었음을 말해 주죠.
  • 늘어진 몸분홍빛 비단옷을 입은 아들은 힘없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요. 창백한 얼굴과 풀린 눈빛이, 빠르게 꺼져 가는 의식을 보여 줘요.
  • 바닥의 지팡이화면 앞쪽 카펫 위에 흉기가 된 긴 지팡이가 나뒹굴어요. 화려한 무늬의 양탄자 위라, 그 붉은 핏자국이 더 섬뜩하게 도드라져요.
  • 어둠 속 정적두 사람만 빛을 받고 방 안 깊은 곳은 어둠에 잠겨 있어요. 그 무거운 적막이, 폭군조차 한낱 떠는 늙은 아버지로 보이게 해요.

이 그림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아들의 모습인가요 아버지의 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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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부른 비극

한 노인이 피 흘리는 젊은이를 품에 끌어안고 있어요. 노인의 눈은 튀어나올 듯 부릅떠 있고, 젊은이의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흘러내려요. 이 노인은 러시아의 폭군 이반 4세, 곧 '뇌제'이고, 그가 안고 있는 건 방금 자신이 홧김에 내리친 지팡이에 머리를 맞아 죽어 가는 아들이에요. 일리야 레핀이 1883년에서 1885년에 걸쳐 그린 이 그림은, 1581년 이반 뇌제가 분노에 휩싸여 제 아들을 죽이고 만 그 끔찍한 순간을 담았어요. 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와 후회,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에 맺힌 눈물 — 그 격렬한 감정이 화면 가득 살아 있어요. 흥미롭게도 이반 뇌제의 모델은 레핀의 동료 화가였고, 죽어 가는 아들의 모델은 작가 가르신이었어요.

1881년의 메아리

레핀이 300년 전의 이 사건을 그리게 된 데에는 그가 살던 시대의 충격이 있었어요.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혁명가의 폭탄에 목숨을 잃었고, 레핀은 그 암살과 뒤이은 처형 장면을 직접 목격했어요. 권력과 폭력, 그리고 피가 부른 비극 — 그 무거운 주제가 그의 마음을 짓눌렀죠. 거기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 가운데 '복수'를 노래한 격렬한 악장이 그를 사로잡았고, 유럽 여행에서 본 투우의 피비린내까지 더해졌어요. 그렇게 쌓인 감정이 '아들을 죽인 아버지'라는 이 처절한 장면으로 터져 나온 거예요. 레핀은 "눈물을 흘리며 그렸고, 스스로를 괴롭혔다"고 고백했어요.

금지되고 훼손된 그림

이 그림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험난한 운명을 겪었어요. 1885년 완성되자마자,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측근의 '혐오스럽다'는 진언을 받아들여 이 그림의 전시를 금지했어요. 러시아 제국에서 검열당한 최초의 그림이었죠. 다행히 금지령은 곧 풀렸지만, 그림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1913년에는 한 청년이 칼로 화면을 세 번이나 그었고(이 소식을 들은 미술관 큐레이터는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2018년에는 또 다른 사람이 금속 봉으로 그림을 내리쳐 크게 훼손했어요. 2018년에도 한 차례 훼손을 겪었지만, 오랜 복원을 거쳐 다시 관람객 앞에 설 수 있었어요. 그렇게 거듭 되살아나, 지금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걸려 있죠. 그림이 건드리는 감정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관람 포인트

먼저 이반 뇌제의 부릅뜬 두 눈을 마주해 보세요.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의 공포와 후회가, 그 눈 하나에 다 담겨 있어요. 그다음 아들을 끌어안은 아버지의 팔과, 상처를 막으려는 듯 황급히 감싼 손에 주목하세요 — 이미 늦었지만요. 젊은 아들의 창백한 얼굴과 눈가에 맺힌 눈물도 들여다보시고요. 마지막으로 어두운 방을 채운 붉은 핏빛과, 두 사람을 감싼 무거운 정적을 느껴 보면, 권력이 끝내 제 핏줄마저 삼켜 버린 비극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올 거예요. 천하의 폭군조차 한순간의 분노 앞에서는,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떠는 한낱 늙은 아버지일 뿐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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