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문수보살도
Five-Syllable Mañjuśrī, Colour on Silk
- 분류
- Paintings
- 지역
- 동아시아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絹本著色五字文殊像』(けんぽんちゃくしょくごじもんじゅぞう)は、鎌倉時代末期・南北朝時代の画僧である文観房弘真の代表作。文観が後醍醐天皇に護持僧として仕えていた建武元年6月9日(1334年7月10日)、数え57歳の時に、亡母への三七日(みなぬか)供養として、慈母的な姿の文殊菩薩を描いた仏教絵画である。昭和11年(1936年)5月6日、重要文化財指定。
가마쿠라 말에서 남북조 시대에 활동한 화승 분칸보 고신의 대표작이에요. 비단에 채색한 불화로, 자애로운 모습의 문수보살을 그렸지요.
고다이고 천황을 곁에서 지키던 호지승이었던 분칸이, 1334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는 공양으로 그렸다고 전해져요. 그래서일까, 문수보살의 모습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어린 듯하지요. 일본의 중요문화재예요.
- 둥근 빛무리 — 보살의 등 뒤로 커다란 둥근 광배가 화면 위쪽을 가득 채워요. 어두워진 비단 바탕 속에서 인물을 환히 떠받쳐 주죠.
- 자애로운 얼굴 — 작은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리고 눈매가 부드러워요. 늠름하기보다 온화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이에요.
- 붉은 사자 — 보살이 올라탄 짐승은 짙은 적갈색 사자예요. 고개를 돌려 입을 벌린 모습이 다소 어수룩하면서도 화면 아래를 묵직하게 받쳐요.
- 양손의 표지 — 한 손엔 곧게 세운 검, 다른 손 곁엔 경전이 놓여 있어요. 이 도구들이 이 인물이 문수보살임을 일러 주는 표지죠.
- 네 귀의 먹글씨 — 화면 네 귀퉁이에 먹으로 쓴 글이 빼곡해요. 그 한 줄 한 줄이 그림에 사연을 새겨 넣은 흔적이에요.
이 얼굴은 신의 위엄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누군가의 그리운 얼굴로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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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기리며 그린 문수보살
「견본착색 오자문수상(絹本著色五字文殊像)」은 가마쿠라 말에서 남북조 시대에 활동한 화승 분칸보 고신의 대표작이에요. 비단에 채색한 불화로, 세로 90.8센티미터, 가로 41.6센티미터랍니다. 분칸이 고다이고 천황의 호지승으로 곁을 지키던 1334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삼칠일(21일째) 공양을 위해, 자애로운 모습의 문수보살을 그린 작품이지요. 1936년에 당시의 국보, 곧 오늘날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어요.
분칸은 본래 진언율종의 둔세승에서 몸을 일으켜 진언종 다이고파의 밀교승을 겸하고, 마침내 고다이고 천황의 불교 면 제일의 측근이 된 인물이에요. 다이고지 좌주, 덴노지 별당, 도지 일장자를 두루 지낸 중세 정치사의 요인이었지요. 동시에 그는 화승으로서도 손꼽혔는데, 중세의 승려 가운데 그가 남긴 미술 작례에 견줄 이가 드물고, 회화에 한정하면 중세 최대라고까지 일컬어진답니다.
관음에서 문수로 이어진 신앙
이 그림 뒤에는 한 전설이 따라요. 분칸의 어머니가 그를 가졌을 때 여의륜관음과 백의관음에게 빌었더니,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붉고 희고 푸른 세 보주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 했대요. 어머니가 흰 보주를 택해 손에 쥐고 낳은 이가 바로 분칸이라는 이야기지요. 전설의 진위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분칸의 관음 신앙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하게 해요.
뒷날 분칸은 문수보살도 신앙하게 되었어요. 한 연구자는 그가 진언율종 총본산인 사이다이지에 든 뒤로 날마다 문수보살을 그리는 일을 수행의 일과로 삼았으리라 추측한답니다. 그의 방호 '문관'과 처음의 법명 '수음'이 '관음문수'의 글자를 뒤섞은 것이라는 게 통설이에요. 어머니의 삼칠일 본존으로는 본래 지장보살이 정형이지만, 분칸의 시대는 아직 과도기였던 데다 그 자신의 깊은 문수 신앙이 더해져 문수보살이 화제로 선택된 것으로 보여요.
화면에 새겨진 글과 도상
오른손에 지혜의 검, 왼손에 경전을 담은 상자를 들고 사자에 올라탄 모습은 문수보살의 전형적인 도상이에요. '오자(五字)'란 곧 '오계(五髻)', 머리 위에 묶은 상투가 다섯이라는 뜻으로, 문수의 상투 수로는 가장 일반적이며 재앙을 없애겠다는 서원의 한 형태를 나타낸답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먹으로 '건무 원년 6월 9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삼칠일에 받들어 이를 그린다'는 글이 적혀 있어요. 글 끝의 실담 문자 두 자는, 한 연구자의 설에 따르면 거꾸로 읽으면 '문(文)'을 가리켜 '문관보 홍진'이라는 서명의 뜻이 된다고 해요. 또 화면 위쪽에는 문수보살을 나타내는 종자(種字)와 함께 게송이 먹으로 쓰여 있는데, 도상 위에 종자를 두는 것은 분칸 작품의 특징이랍니다.
화승의 붓이기에 깃든 따뜻함
한 연구자는 이 그림이 전문 불화사의 작품에 비하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평해요. 보살의 묘선에 날카로움이 부족하고 장식품의 형태도 섬세하지 않으며, 고개를 뒤로 돌려 입을 떡 벌린 사자의 모습도 그리 매끈하지 않다는 거예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도리어 분칸 본인의 붓임이 증명된다고 보았지요. 또 일반적인 문수보살상이 동자의 모습에 영민하고 늠름한 얼굴로 표현되는 데 비해,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다소 여성적이며, 미소 띤 눈매와 입가에 자애가 어려 있어요. 그래서 그는 상상을 더하자면 분칸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을 문수보살을 통해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답니다. 또 다른 연구자도 고승의 '어머니를 향한 사사로운 정이 담긴 화상으로서 깊은 맛이 있는 작품'이라 평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문수보살의 얼굴에 머무르며 그 눈매와 입가를 보세요. 늠름한 동자가 아니라 부드럽고 자애로운, 어쩌면 화가가 떠올린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 비치는 듯하답니다. 다음으로 오른손의 지혜의 검과 왼손의 경전 상자, 그리고 머리 위 다섯 상투를 찾아보세요. 이 도상 하나하나가 문수보살임을 일러 주는 표지랍니다. 고개를 돌려 입을 벌린 사자의 다소 어수룩한 모습도 놓치지 마세요. 매끈하지 않은 그 손길이 도리어 화승 분칸 자신의 붓임을 증언하지요. 마지막으로 화면 왼쪽 아래의 먹글씨를 떠올리며 보세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삼칠일에 받들어 그린다'는 그 한 줄이, 이 한 폭의 불화를 아들이 어머니께 올린 깊은 추모로 바꾸어 놓는답니다.

법구를 든 천황, 왕권과 불교가 하나로 그려진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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