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à
← 소장품으로

장미 화관의 축제

Feast of the Rosary

알브레히트 뒤러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The Feast of the Rosary is a 1506 oil painting by Albrecht Dürer, now in the National Gallery, Prague, Czech Republic. According to Czech art historian Jaroslav Pešina, it is "probably the most superb painting that a German master has ever created." The work also relates to a series of artworks commissioned by Maximilian I, his Burgundian subjects or figures close to his family to commemorate the Duchess Mary of Burgundy, Maximilian's first wife and to provide the focus for a cult-like phenomenon that associated her with her name-saint, the Virgin Mary.

도슨트 이야기

1506년 베네치아, 뒤러는 숙소 작업실에서 붓을 놓지 않았어요. 뉘른베르크 독일 상인 조합이 의뢰한 이 제단화를 완성하는 데 계약 기한을 이미 넘기고 있었거든요.

그림이 거의 완성될 무렵, 도제(베네치아 총독)와 총대주교, 귀족들, 그리고 화가들이 작업실을 방문했어요. 조반니 벨리니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져요. 뒤러는 이날의 일을 훗날 편지에 적었는데, 도제가 그에게 베네치아의 공식 화가로 남아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해요. 뒤러는 정중히 거절했어요.

화면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가 옥좌에 앉아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양쪽에 교황 율리우스 2세와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무릎을 꿇고 있어요. 당대 가톨릭 세계의 최고 권위자 두 사람이 왕관을 벗고 성모 앞에 고개를 숙인 장면이에요. 그런데 그림 오른쪽 끝, 알프스 산자락이 보이는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어요.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이 인물이 바로 뒤러 자신이에요. 작품 완성에 걸린 시간을 적은 서명과 함께.

이 그림은 이후 오랜 세월 여러 차례 복원을 거쳤어요. 화면의 약 3분의 2가 후대에 덧칠됐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거든요. 황제 루돌프 2세가 1606년에 사들여 프라하로 옮긴 뒤, 수도원을 거쳐 지금은 프라하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훼손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했지만, 화면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 뒤러의 자리는 지워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보세요
  • 푸른 중심화면 한가운데, 깊고 선명한 파란 망토를 두른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 인파 속에서 단번에 눈에 들어와요.
  • 맞절하는 두 사람왼편엔 붉은 옷의 인물이, 오른편엔 황금빛 망토를 두른 인물이 성모를 향해 머리를 숙여, 좌우가 거울처럼 마주 보는 구도예요.
  • 장미빛 화관아기 예수와 성모, 천사들의 손끝마다 분홍빛 화관이 들려 사람들 머리 위로 옮겨지는 중이지요.
  • 발치의 류트옥좌 바로 아래, 황금빛 옷의 어린 천사가 고개를 숙인 채 류트를 켜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화면을 받쳐요.
  • 날아드는 풍경인물들 머리 위로 푸른 하늘과 멀리 눈 덮인 산봉우리가 트여 있고, 작은 천사들이 공중을 날아 화관을 나르네요.

이 빼곡한 인파 속에서, 당신의 눈은 누구의 얼굴에 가장 먼저 머무나요?

도슨트 심화더 깊이 보기 ↓

베네치아에서 그린 독일 거장의 걸작

1506년, 알브레히트 뒤러는 베네치아에 머물며 이 대형 제단화를 완성했어요. 체코 미술사가 야로슬라프 페시나는 이 작품을 두고 '독일 거장이 그린 가장 빼어난 그림일 것'이라 했지요. 본디 이 그림은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교황 율리오 2세 사이를 중개하던 거상 야코프 푸거의 의뢰로 시작되었고, 베네치아의 독일 상인 형제회가 다시 계약을 맺어 그곳 독일인 교회 산 바르톨로메오에 걸기로 했답니다.

계약에 따르면 그림은 1506년 5월까지 완성되어야 했어요. 그해 9월, 작품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베네치아의 도제와 총대주교, 여러 귀족과 화가들이 뒤러의 공방을 찾아왔지요. 훗날 뒤러는 한 편지에서, 도제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공식 화가 자리를 제안했지만 자신이 거절했노라 적었답니다. 그날 방문객 가운데에는 노대가 조반니 벨리니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요.

장미 화관을 씌우는 성모

화면 한가운데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옥좌에 앉아 있어요. 그 위로 두 천사가 금과 진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을 받쳐 들고, 성모의 발치에선 한 천사가 류트를 켜고 있지요. 이 류트 켜는 천사는 벨리니의 제단화에 바치는 분명한 경의랍니다. 성모는 양옆에 무릎 꿇은 두 무리의 신자에게 장미 화관을 나누어 주고 있어요.

왼쪽 무리의 맨 앞에는 아기 예수가 관을 씌워 주는 교황 율리오 2세가, 오른쪽에는 성모가 관을 씌워 주는 황제가 있답니다. 가톨릭 세계 최고의 두 권위인 교황과 황제가 각각 삼중관과 제관을 벗어 내려놓고, 성모 앞에 무릎 꿇어 축복을 받는 모습이지요. 오른쪽 가장자리, 알프스의 무성한 풍경 곁에는 손에 글이 적힌 종이를 든 뒤러 자신의 자화상도 숨어 있어요. 바로 그 종이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적은 서명이 남아 있답니다.

한 여인을 기리는 그림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의미가 겹쳐 있어요. 막시밀리안 1세의 첫 부인 부르고뉴의 마리를 기리는 헌사라는 해석이지요. 성모 마리아가 마리를, 아기 예수가 그 아들을 빗댄다고 보는 거예요. 실제로 막시밀리안과 그의 아버지는 1475년 쾰른에서 장미 형제회가 세워질 때 초창기 회원이었고, 일찍이 부르고뉴 궁정 연대기는 마리의 머리에 상징적인 장미 묵주를 얹기도 했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도 있어요. 1606년 황제 루돌프 2세가 이 그림을 사들여 프라하로 옮긴 뒤, 그림은 수도원을 거치며 여러 차례 복원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표면이 적잖이 상했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면의 상당 부분, 특히 인물들의 머리와 패널의 절반쯤은 후대에 다시 칠해진 것이지요. 그럼에도 베네치아의 빛을 머금은 이 그림의 기품은 여전히 또렷하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화면 한가운데, 아기 예수를 안고 장미 화관을 나누어 주는 성모께 눈길을 두세요. 그리고 양옆 맨 앞에서 무릎 꿇은 두 인물, 곧 삼중관을 벗은 교황과 제관을 벗은 황제를 견주어 보세요. 세속의 두 최고 권위가 성모 앞에서 나란히 머리를 숙인 구도랍니다. 발치에서 류트를 켜는 작은 천사도 찾아보세요. 베네치아의 거장 벨리니에게 바치는 인사니까요. 마지막으로 오른쪽 가장자리, 종이 한 장을 든 인물을 살펴보세요. 바로 뒤러 자신이랍니다. 그 손의 종이에 그가 이 그림에 쏟은 시간을 적어 두었음을 떠올리면, 베네치아의 빛과 북유럽의 섬세함이 만난 이 그림이 한결 가깝게 다가올 거예요.

관련 용어
다음 이야기
Self-Portrait with Fur-Trimmed Robe
28세의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1500년, 화가는 자신을 정면으로 그렸다 —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허락된 자세로.

이어 보기 →
이 작가의 다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