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옷 벗김
The Disrobing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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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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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옷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또는 엘 엑스폴리오(스페인어: El Expolio, 라틴어: Exspolĭum)는 엘 그레코가 1577년 여름에 시작하여 1579년 봄에 완성한 그림으로, 톨레도 대성당의 성구실 제단에 그려진 그림이다. 2013년 말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청소 및 보존 작업을 마친 후 일시적으로 전시되었으며, 2014년에 톨레도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1577년 7월 2일자 문서에서 이 그림을 언급하는 문서가 있는데, 이것이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왔다는 가장 이른 기록이다. 엘 그레코는 이 그림을 톨레도 대성당의 학장인 디에고 데 카스티야에게 의뢰받았는데, 이 의뢰는 로마 시절부터 친구였던 카스티야의 아들 루이스 덕분이었다. 카스티야는 엘 그레코가 톨레도의 산토 도밍고 엘 안티고 교회를 위한 그림을 의뢰받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1577년 여름, 톨레도 대성당 제의실 제단화를 막 의뢰받은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이었어요. 그가 선택한 장면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그리스도의 붉은 겉옷이 강제로 벗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순수한 진홍색 옷을 입은 그리스도가 서 있어요. 그를 둘러싼 처형인들은 위에서 아래로 빽빽이 들어차 있고,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은 손가락으로 그를 고발하듯 가리키며, 다른 이들은 누가 옷을 차지할지를 놓고 다투고 있지요. 왼쪽에서는 밧줄로 손목을 묶인 채 하늘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얼굴만이 고요합니다. 화가는 이 고요함과 주변의 소란을 극적으로 맞붙여 놓았어요.
그림이 완성되자 곧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대성당 측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어요. 처형인들의 머리가 그리스도의 머리보다 높게 그려졌다는 것, 화면 왼쪽 아래에 세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복음서에는 이 시점에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이었지요. 중재 재판까지 간 끝에 그레코는 자신의 감정가인 950두카트 대신 350두카트만 받았어요.
그러나 그레코는 문제 삼은 인물들을 한 명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세 명의 마리아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어요. 그리고 이 그림은 현재 열일곱 점 이상의 복제본이 알려질 만큼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소송에서 진 화가가 예술적으로는 이긴 셈이에요.
원래 이 작품을 위해 그레코가 직접 설계한 금박 제단은 훗날 소실됐지만, 그림 자체는 완성 이래 줄곧 톨레도 대성당 제의실에 걸려 있습니다. 붉은 옷 한 폭에 집중된 색채의 힘이, 4백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 온 이유일 거예요.
- 붉은 옷 — 그리스도가 걸친 선명한 붉은 옷이 화면 한복판에서 홀로 환하게 타올라요. 엘 그레코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곳이지요.
- 맑은 눈빛 — 거친 형리들의 얼굴이 빽빽이 에워싼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늘을 향해 고요한 눈을 들어요. 둘레의 폭력에서 홀로 동떨어진 듯하지요.
- 치솟은 인물 — 머리와 창과 도끼창이 위로 빽빽이 쌓여 올라, 화면이 벽처럼 수직으로 세워졌어요. 그 답답한 짜임이 영적인 긴장을 자아낸답니다.
- 못 박는 손 — 오른쪽 아래, 노란 옷의 사내가 십자가에 몸을 굽혀 못 구멍을 뚫고 있어요. 다가올 처형을 묵묵히 준비하는 그 손길이 평온한 얼굴과 날카롭게 맞부딪히지요.
- 지켜보는 마리아 — 왼쪽 아래엔 세 마리아가 비통한 얼굴로 이 광경을 바라봐요. 복음서에 없는 이들을 그려 넣어 대성당과 다툼까지 벌였던 인물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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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에서의 첫걸음
그리스 크레타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를 거쳐 온 화가 엘 그레코는,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며 이 그림으로 새로운 삶의 첫발을 내디뎠어요. 1577년 여름에 그리기 시작해 1579년 봄에 완성한 이 작품은, 톨레도 대성당 제의실 중앙 제단을 위한 것이었지요. 지금도 그 자리에 걸려 있답니다. 사실 1577년 7월 2일자로 이 그림을 언급한 문서는,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머물렀음을 보여 주는 가장 이른 기록이기도 해요.
이 큰 일감은 우연히 굴러든 것이 아니었어요. 로마 시절 사귄 친구 루이스가 다리를 놓아 준 덕분이었지요. 루이스의 아버지는 톨레도 대성당의 수석 사제였고, 그는 엘 그레코에게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성당의 그림이라는 또 다른 큰 일까지 함께 마련해 주었답니다.
붉은 옷 한 벌에 쏟아부은 모든 것
처형을 앞둔 그리스도의 옷이 막 벗겨지려는 순간이에요. 그리스도는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르고, 그 이상화된 모습은 둘레의 폭력과 군중에게서 홀로 동떨어진 듯 보이지요. 배경의 검은 옷 입은 인물은 그리스도를 손가락질하며 고발하고, 두 사람은 그의 옷을 누가 차지할지 다투고 있어요. 왼쪽의 초록 옷 사내는 밧줄로 그를 단단히 붙든 채 막 옷을 찢어 내려 하고, 오른쪽 아래 노란 옷 사내는 십자가에 몸을 굽혀 못을 박을 구멍을 뚫고 있답니다.
엘 그레코가 자신의 예술적 힘을 송두리째 쏟아부은 곳은 바로 그리스도가 걸친 선명한 붉은 옷이에요. 신의 수난을 암시하는 이 붉은빛이 화면을 찬가처럼 울리고, 앞쪽의 노랑과 파랑만이 거기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음을 더하지요.
성당과 화가의 다툼
왼쪽 앞에는 세 마리아가 비통한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봐요. 그런데 대성당 측은 이 인물들이 못마땅했어요. 복음서에는 이 장면에 그들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었거든요. 엘 그레코는 아마 성 보나벤투라의 「예수 그리스도 수난 묵상」 같은 글에서 이 세부와 그리스도 손목의 밧줄 같은 요소를 가져왔을 거예요. 게다가 형리들을 그리스도의 머리보다 높이 배치한 것도 트집의 대상이 되었지요.
결국 이 그림은 값을 둘러싼 분쟁으로 번졌어요. 엘 그레코의 감정인은 950두카트의 값을 매겼지만, 화가는 법적 중재에 호소한 끝에 겨우 350두카트만 받았답니다. 문제 삼은 인물들을 빼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비잔틴의 기억과 명성
미술사가 해럴드 웨디는 이 작품을 '비범한 독창성을 지닌 걸작'이라 평했어요. 인물들을 앞쪽에 수직으로 빽빽이 쌓아 올린 구성은, 그리스도를 짓누르는 형리들의 압박을 드러내려는 화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웨디는 엘 그레코가 머리를 줄줄이 겹쳐 군중을 암시하던 후기 비잔틴 회화를 떠올렸을 거라고 보았답니다. 크레타에서 자란 화가의 뿌리가 여기서 은근히 비치는 셈이에요.
대성당 측의 불평에도 이 그림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어요. 오늘날 알려진 이본만 해도 열일곱 점이 넘는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그리스도가 걸친 붉은 옷에 시선을 맡겨 보세요. 화면 전체에서 이 붉은빛이 어떻게 홀로 환하게 타오르며 시선을 끌어당기는지 느껴 보는 거예요. 그다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세요. 거친 형리들의 얼굴이 둘레를 에워싼 가운데, 오직 그만이 하늘을 향해 맑고 고요한 눈빛을 들고 있지요. 위로 길게 솟구친 인물들의 짜임도 눈여겨보세요. 화면이 마치 벽처럼 수직으로 세워져, 영적인 긴장을 자아낸답니다. 오른쪽 아래 노란 옷 사내가 십자가에 구멍을 뚫는 모습도 놓치지 마세요. 다가올 처형을 묵묵히 준비하는 그 손길이, 평온한 그리스도의 얼굴과 더없이 날카롭게 맞부딪힌답니다.

천상과 지상이 한 화면에 — 그리고 귀퉁이엔 화가의 어린 아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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