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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의 여인들

Tahitian Women on the Beach

폴 고갱

분류
Paintings
지역
서양
라이선스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소개

《타히티의 여인들》 은 프랑스 예술가 폴 고갱의 유화이다. 두 명의 타히티 여인을 묘사한 이 작품은 고갱이 처음으로 타히티에 방문했을 때 완성한 일련의 작품 중 하나이다. 고갱은 그 기간동안 섬의 환경과 사람, 그리고 유럽과 문화적, 미학적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이 작품은 타히티 낙원의 신비와 상징성에 싸인 두 인물을 묘사한다.

도슨트 이야기

1891년, 폴 고갱은 파리를 등지고 타히티로 건너갔어요. 스스로 편지에 쓴 것처럼 '황홀, 고요, 예술'을 찾아서였죠. 유럽의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원시의 세계로 가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첫 번째 타히티 체류가 끝나갈 무렵 그린 이 그림에는 두 여인이 앉아 있어요. 왼쪽 여인은 전통 파레우를 걸쳤고, 오른쪽 여인은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식 드레스를 입었어요. 드레스 한 벌이 식민지 역사 전체를 말없이 드러내고 있어요.

두 여인은 서로를 보지 않아요. 말도 없고 몸짓도 없어요. 고갱은 이 침묵에 매료돼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된다'고 그는 썼어요. 그 고요함이 그림 전체에 흐르고 있어요.

그림을 들여다보면 배경이 모호해요. 황토·노랑 구역의 사선, 초록과 파랑 사이의 흰 선 — 해변인지, 타히티 전통 베란다인지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에요. 1892년에 고갱이 거의 같은 구성으로 그린 '파라우 아피'에는 오른쪽 상단에 나무 기둥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실내라는 증거라는 해석도 있어요. 고갱은 정보를 숨겨둔 채 보는 이를 미지(未知) 속에 두었어요.

이 그림은 훗날 에드가 드가의 권유로 파리의 뒤랑-뤼엘 화랑에서 전시됐어요.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 컬렉션에 있어요. 고갱이 찾던 낙원은 이미 식민지화돼 있었지만, 두 여인의 침묵은 그가 끝내 말로 풀지 못한 무언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세요
  • 두 의상왼쪽 여인은 붉은 천에 흰 꽃무늬가 핀 전통 옷을, 오른쪽 여인은 목까지 단정히 여민 연분홍 드레스를 입었어요. 토착의 색과 선교사가 들여온 양식이 한 화면에 나란히 앉아 있지요.
  • 색면의 띠배경은 노란 모래, 그 위 초록 띠, 다시 짙푸른 바다와 하늘로 단순하게 층을 이뤄요. 깊이를 파고들기보다 평평한 색면으로 잘라낸, 유럽 회화와는 사뭇 다른 짜임이에요.
  • 조각 같은 몸두 여인의 묵직한 팔과 다리는 호박빛으로 단단하게 칠해져 거의 조각상처럼 느껴져요. 윤곽선이 또렷해 색이 안에 갇힌 듯하지요.
  • 어긋난 시선가까이 붙어 앉았는데도 서로를 보지 않아요. 왼쪽 여인은 고개를 떨궈 무언가에 잠겼고, 오른쪽 여인은 우리 쪽을 멍하니 응시하죠. 둘 사이엔 깊은 침묵만 흘러요.
  • 발치의 작은 것들모래 위에 흰 꽃 한 송이와 작은 물건들이 흩어져 있어요. 큼직한 인물들 사이에서 이 자잘한 디테일이 고요한 일상의 한순간을 일러 주지요.

두 여인은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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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찾아 떠난 화가

폴 고갱은 안정된 증권 중개인의 삶을 버리고 그림에 투신한, 참 독특한 이력의 화가예요. 그는 유럽의 물질주의와 문명에 깊이 지쳐 있었어요. 그래서 1891년, 더 원초적이고 순수한 무언가를 찾아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났지요.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황홀과 고요와 예술'을 찾아서요. 《타히티의 여인들》은 바로 그 첫 번째 타히티 체류(1891~1893년)가 끝나갈 무렵 그린 연작 중 한 점이랍니다.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지요.

고갱은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드가의 권유로, 이 그림을 파리로 보내 뒤랑뤼엘 화랑에서 전시하게 했어요. 그가 꿈꾸던 '때 묻지 않은 에덴'은 사실 프랑스 식민 지배로 이미 많이 변해 있었지만, 고갱은 그 변화 너머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낙원의 이미지를 빚어냈답니다.

클루아조니슴과 종합주의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강렬하고 단순한 색면이에요. 주황, 노랑, 분홍, 황토색, 짙은 붉은빛, 청록이 장식적인 무늬처럼 펼쳐지지요. 고갱은 어두운 윤곽선으로 평평한 색면을 구획하는 '클루아조니슴' 기법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종합주의(생테티슴)'를 발전시켰어요.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대상이 품은 내면의 시정과 상징을 끌어내려 한 것이죠.

그래서 두 여인의 모습도 사실적인 초상과는 거리가 있어요. 깊은 호박빛 피부에 단단하고 묵직한 체격이 거의 조각상처럼 느껴지지요. 얼굴은 가면 같아 보여서, 그림은 특정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하나의 장르화로 다가와요. 흥미롭게도 제목은 '해변'을 말하지만, 화면의 사선과 흰 선들이 모래와 파도가 아니라 건축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봐요. 어쩌면 두 여인은 해변이 아니라 타히티식 베란다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 모호함이 오히려 그림의 신비를 더한답니다.

두 여인, 두 세계

두 여인을 자세히 보면 그 의상이 의미심장해요. 왼쪽 여인은 타히티 전통 의상인 '파레우'를 둘렀고, 오른쪽 여인은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있어요. 한 화면 안에 섬의 토착 문화와 그 위에 덧씌워진 식민·기독교의 흔적이 나란히 놓인 셈이죠.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 앉아 있지만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각자 깊은 침묵과 사색 속에 잠겨 있지요. 고갱은 이 섬의 고요에 매혹되어, '사람들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가만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적었어요. 여인들의 멜랑콜리한 표정에는 그 적막이 고스란히 배어 있답니다. 다만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이 그림을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유럽인이 '원시'와 '야성'을 동경하며 식민지 사람들을 대상화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함께 따라다니거든요. 그 빛과 그늘을 함께 헤아릴 때, 그림은 더 깊이 다가온답니다.

관람 포인트

먼저 두 여인의 의상을 비교해 보세요. 왼쪽의 전통 파레우와 오른쪽의 선교사 드레스가, 한 화면 안에서 토착 문화와 식민의 만남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어요. 그다음엔 여인들의 피부와 몸에 주목하세요. 깊은 호박빛으로 칠해진 단단한 체격이 거의 조각처럼 묵직하게 다가올 거예요. 가면 같은 두 얼굴의 무표정도 천천히 살펴보시고요. 배경의 색면도 놓치지 마세요. 황토와 노랑의 사선, 초록과 파랑을 가르는 흰 선이 정말 모래와 바다인지, 아니면 베란다 마루와 기둥인지 스스로 짐작해 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걸음 물러나 화면 전체의 색채를 느껴 보세요. 윤곽선으로 구획된 평평한 색면들이 자아내는, 유럽 회화와는 다른 그 낯설고도 신비로운 고요를 음미해 보시길 바라요.

이 작품이 속한 기획전
다음 이야기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자살을 앞둔 고갱이 유언처럼 남긴 거대한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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