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분류
- Paintings
- 지역
- 서양
- 라이선스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프랑스어: D'où venons-nous ? Que sommes-nous ? Où allons-nous ?)는 프랑스 예술가 폴 고갱이 1897년에서 1898년 사이,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타히티섬을 방문했을 때 제작되었으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갱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복음서의 주제에 비견될 만한 철학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1897년 타히티, 고갱은 막다른 곳에 몰려 있었어요. 피부병과 매독, 빚더미, 그리고 코펜하겐에서 날아온 딸의 부고. 그는 친구 다니엘 드 몽프레에게 편지를 써서 12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알렸어요. 하지만 그 전에 하나만큼은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살면서 품어온 생각을 모두 담은 커다란 그림 하나.
캔버스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요. 잠든 아기 곁에 쪼그린 세 여인이 삶의 시작을 이루고, 가운데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인물은 마치 에덴의 이브처럼 서 있어요. 왼쪽 끝에는 생각에 잠긴 노파가 앉아 있고, 그 발치에는 '헛된 말의 무용함'을 상징하는 하얀 새가 있어요. 그 뒤로 푸르스름한 신상이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죠. 탄생에서 죄,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고갱은 이렇게 그림 한 장에 눌러 담았어요.
그림을 완성하고 그는 비소를 먹었어요. 그러나 죽지 않았어요.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오히려 구토로 살아났다고 전해져요. 이듬해 그는 이 작품을 파리의 화상 볼라르에게 보냈고, 갤러리에 걸린 그림은 엇갈린 평가를 받았어요. 어떤 비평가는 '불투명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불편하면서도 경외심을 느낀다고 썼어요.
고갱은 훗날 비평가 퐁텐에게 답장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어요. 퓌비 드 샤반의 그림처럼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자신의 그림은 '감정의 회화 언어'이며, 문학적 언어로는 결코 옮길 수 없는 것이라고요. 절망의 벼랑에서 그려낸 그림이 오히려 그의 가장 담대한 선언이 된 거예요.
- 가로로 펼친 삶 — 벽화처럼 가로로 길게 뻗은 화폭에, 사람과 동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한 장면이 아니라 여러 순간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듯하죠.
- 양 끝의 두 사람 — 왼쪽 끝에는 웅크려 머리를 감싼 사람이, 오른쪽 끝에는 잠든 아기가 보여요. 화면 양 끝에 삶의 끝과 시작을 마주 놓은 셈이에요.
- 한가운데 든 팔 — 정중앙, 노란 살빛의 인물이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어 무언가를 따려는 듯해요. 화면에서 가장 밝고 곧게 선 이 몸이, 길게 흩어진 인물들 사이의 중심을 잡아 줘요.
- 푸른 우상 — 왼쪽 뒤편, 두 팔을 든 푸른 형상이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어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듯,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죠.
- 짙은 초록과 황금빛 — 배경은 열대의 짙은 초록과 푸른 그늘로 깊고, 인물들의 살결은 따뜻한 황금빛이에요. 두 색의 대비가 화면 전체에 묵직한 꿈결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요.
오른쪽 아기에서 왼쪽 노인까지 눈으로 따라가 보면, 그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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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폭에 담은 삶 전체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제목부터가 하나의 철학적 물음인 이 그림은, 폴 고갱이 1897년에서 1898년 사이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완성한 대작이에요. 가로로 길게 뻗은 거대한 화폭에, 고갱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 삶 전체를 한 장면에 담으려 했어요. 열대의 짙은 초록과 황금빛 살결, 신비로운 푸른 우상이 어우러진 이 그림을, 고갱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걸작'이라 불렀어요. 복음서에 견줄 만한 철학적인 작품이라는 평도 있죠. 정답을 주는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 각자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죠. 무려 가로 3미터 70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벽화 같은 화폭은, 고갱이 평생 그린 가장 큰 그림이기도 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해요. 그러면 삶의 한살이가 차례로 펼쳐지거든요. 오른쪽 끝에는 잠든 갓난아기와 세 여인이 있어 삶의 시작을 알려요. 화면 한가운데에는 한 인물이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데, 고갱은 이를 선악과를 따는 이브에 빗댔어요. 그리고 왼쪽 끝에는 죽음을 앞둔 한 노파가 웅크리고 앉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생각에 잠겨 있어요. 그 발치에는 하얀 새 한 마리가 있는데, 고갱은 이를 "헛된 말의 부질없음"을 뜻한다고 했죠. 그렇게 화면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 모든 것 너머에는 '저세상'을 상징하는 푸른 우상이 조용히 서 있어요.
죽음을 앞두고 그린 그림
이 그림의 세 가지 물음은 사실 고갱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한 주교의 교리문답에서 비롯됐어요. 평생 마음에 남아 있던 그 질문들을, 고갱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화폭으로 풀어냈죠. 이 그림을 그릴 무렵 고갱은 병과 빚에 시달렸고, 멀리 두고 온 딸의 죽음 소식까지 들었어요.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털어놓으면서도, 그 전에 자기 생각의 결정체가 될 큰 그림 하나만은 꼭 그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이 작품을 완성한 뒤, 그는 실제로 비소를 삼켜 자살을 시도했어요. 완성된 그림을 파리로 보내자, 평론가들은 그 뜻을 두고 '난해하다'며 엇갈린 반응을 보였죠. 한 사람이 삶의 끝자락에서 던진 가장 절박한 질문이, 이 거대한 화폭에 담겨 있는 거예요. 지금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요.
관람 포인트
먼저 그림을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으로 천천히 읽어 보세요. 잠든 아기에서 시작해, 한창때의 사람들을 지나, 죽음을 앞둔 노파에 이르는 삶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올 거예요. 그다음 화면 한가운데, 팔을 들어 열매를 따는 인물에 주목하세요 — 낙원과 원죄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그림의 중심이에요. 왼쪽 노파의 발치에 앉은 하얀 새와, 배경의 푸른 우상도 찾아보시고요. 마지막으로 제목의 세 가지 물음을 가만히 되뇌며 그림을 바라보면, 고갱이 끝내 말로는 답할 수 없다고 한 그 질문들이 색과 형태로 다가올 거예요. 어쩌면 이 그림은 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묻는 자리인지도 몰라요.

브르타뉴 가을 들판의 십자가, 고갱이 자신을 그리스도에 빗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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